
*이 글은 제가 활동하는 동호회 게시판에 올린글입니다. 음악 동호회 게시판이기에 철학 이야기는 생략했습니다.
보면서 참으로 부아가 치미는 영화가 있습니다 -취화선이 바로 그 영화입니다
이런영화로 칸느감독상을 받았다니 정말 칸느수준에 허허!하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이 영화 시작에 한번의 '박' 소리가 나면서 수제천이 연주됩니다
중간에 두어번 더 나오고 마지막에 수제천이 이어지다 세번의 '박'이 끝남을 알립니다
물론 여기서 수제천은 참으로 몰염치한 음악담당의 '택도 없는'신디싸이져로 오염되어있습니다
정말 싫은(좋은 뽕짝도 많습니다만) 뽕짝이라는 물에 허우적대는 수제천이라는 국수가닥이 안스러웠습니다
교육방송에서나 나옴직한 박물관견학 안내인의 설명같은 대사는 영화의 서사방식에 얼마나 무지해야
이토록 폭력적으로 영화와 영상을 부조화하고 파괴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전형같았습니다.
아무런 연관성도 필연성을 느낄수없는 아햏햏한 최민식의 거친연기와 미친짓. 이 짓을하면서도 계속되는
강박증 그리고 밥맛떨어지는 룸펜지식인 안성기의 구두선적인 '진경'에 대한 헛소리는
그나마 참을 수 있었습니다.
카메라감독의 역량 때문인지 좋은 그림은 있었고 참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사에 나오듯 영상은 관객을 끌어가야지 욱박지르고 반복해서는 않되는 법입니다.
아마 찍는 사람도 지겨웠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원의 말대로 환쟁이에게 반복은 죽음이니까요
여기까지는 참습니다.
하지만 이 모두를 기용하여 총괄하고 지도하고 편집한 감독을 믿고 자금을 투자한 사람들에게 무척이나 큰
애도의 감을 감출 수 없습니다.
내가 보기에 한 때 우리나라 영화의 목표가 "말되는 서사구조"였던 적이있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왜 저럴까?"하는 의구심을 가질 때, 그 영화의 관객은 제3자가 됩니다.
요즘은 말도되고 심지어 필연적이라고 느껴지는 영화가 더 많지요.
이런 선형적인 서사구조에 반기를 든 작품이 바로 이 취화선이 아닌가 합니다
평론가들이 이야기 했던 한국적 해체? 전혀 아니올시다입니다.
제 생각에는이 영화는 단순히 감독의 원래 출신지였던 기록영화(대한뉴스)의 한 몽상적버젼이 아닌가 합니다.
나름대로 구조에 신경을 쓴 부분에서는 관객에게 "왜?"를 묻게하는 연출과 편집은 관객들에게정말로 대단한
소외효과를 일으킵니다. 칸느 심사위원들도 아마 이 소외효과의 실존성에 관심을 둔것이 아닌가합니다.
서편제에서도 소리와도, 득음과도 아무런 연관없는 딸 눈만 빼버리더니
이번에도 미신적인 소신공양을 마지막으로 박을 세번 치며 대미를 장식합니다
어느 평론가는 이런 점을 형식의 파괴라고 하지만 참으로 x풀뜯는 소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훼손이 어떤 의미로 이끄는가를 묻게되고 그렇게 오원이 씹던'새한도'를 배의 모습으로 모조한듯한
배한척으로 이 훼손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애밀레의 소신공양을 하기에
오원은 너무나 닳아빠졌기 때문이고 중간의 대사대로 "지붕에 올라간다고 그림이 그려지지는 않는다"입니다.
왜 이 영화에 민영식, 김옥균, 전봉준이 저토록 구겨진 모습으로 나와야 했는지는 감독만이 알 것입니다.
수제천은 영혼을 얼어붙일만큼 위대한 곡입니다. 이 곡의 기본생각은 취해서 날아간 신선이 아니라
엄정한 순서와 그 조화에 입각해 무시무종의 세계를 보여주는 근엄한 유교적 이상을 들려줍니다.
오원이 그렇게 경멸해 마지않던 "그림이 않되는 새끼들"의 이상인 수제천을 사용하여
오원의 생예를 액자로 만든 작가는 일종의 패러디의 의미로 기획하고 연출한 것이 아닌가 궁금해집니다.
누군가 이 영화를 저주받은 걸작이라고 했는데
제가 보기에는 저주받은 것은 맞지만 걸작과는 전혀상관없는 순전히 오감불만족하고 부조화한 졸작입니다.
하여간 한국화에 대한 공부용 이외의 용도로는 절대로 보지마세요
*저는 강의용으로 학생들과 보았습니다(대사, 음악, 카메라, 연출이 가장 부조화스러운 대표적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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