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학 연구' 특집호에 게재한 논문입니다. 제에게는 월드컵 축구도 여가활동입니다. 여가와 세계화를 연구하는 사람의 시각에서 2002 한일 월드컵을 분석했습니다. 비판적인 답변을 기대합니다. 동일한 주제의 다른 논문을 준비 중입니다. 비판적인 답변이 있으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세계화와 여가의 사회적 의미: 2002 한․일 월드컵을 중심으로
The Meaning of Leisure Practice under Globalisation: 2002 Korea-Japan World Cup
Abstract
It's almost impossible to understand local or national experiences without reference to globalisation process. The globalisation of sport have impact on the embodied national identities and this is embedded in local and national cultural processes. The game style and supporting culture seemed utterly distant from standardisation and homogenisation. Korean style power soccer had been created by the Korean national football squad and the sporting event had been changed into the representational space of national identities. What had been observed is that sport as a leisure practice in globalisation and national identity formation plays contradictory role, diminishing contrasts and increasing varieties.
핵심용어: 세계화, 여가, 민족정체성, 차이감소, 다양성 증가
Ⅰ. 서론
고도근대성 하에서 세계화는 전 세계의 모든 문화를 동시에 유통시킴으로써 민족국가의 문화적 일관성을 약화시키고 민족정체성에 혼동(dislocation)을 초래한다. 혼동으로 야기된 정체성 위기에 대처하면서 행위자들의 성찰성(reflexivity)도 증대한다. 지구시장에서 소비하는 문화생산물에 대해서 사람들은 나름대로 해석을 하고 또 능동적으로 사용한다. 이 과정에서 무한하게 다양한 다름과 같음 간의 경쟁이 펼쳐지고, 차이가 줄어들면서도 다양성이 증가하는 모순적인 양상이 전개된다. 그러므로 동질화와 이질화, 획일성과 다양성, 지구정체성과 민족정체성, 통합과 분열 등의 문제는 어느 한 쪽을 선택하는 문제도 아니거니와 별개로 전개되고 있는 동전의 양면도 아니다. 양자는 서로 교차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지점에서 균형(balances)과 융합(blends)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것이 어떻게 변동해 왔으며 어떻게 변동할 것인지 등이 문젯거리로 등장한다(Bairner, 2001: 6-16; Jarvie & Maguire, 1994: 250-256; Maguire, 1999: 36-56, 84-92). 이처럼 고도근대성 하에서 세계화는 다원적이고 다문화적인 민족정체성의 재구성을 요청하고 있으며, 이 점에 있어서 미국도 예외일 수 없다. 피자나 케밥이 빅맥보다 미국적이 아니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미국이 지구적 표준을 생산하고 그것을 전세계로 확산시켜서 지구적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만큼 미국은 전세계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다. 따라서 동양과 서양, 한국과 영국간에 문화적 차이는 줄어들면서도 미국화 뿐만 아니라 유럽화․동양화․아프리카화․남미화 등이 동시에 발생해서 다양성이 더욱 증가하는 양상이 전개된다.
스포츠 역시 세계화됨으로써 커다란 변동의 과정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고 있다. 근대성 하에서 영국화와 서구화는 근대스포츠를 국제적으로 확산시켰다. 고도근대성(또는 후기근대성) 하에서 세계화는 스포츠의 미국화를 초래하여 세계문화의 동질화시켰지만 다른 한편으로 미국화에 대한 저항을 낳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동양의 스포츠가 미국과 유럽으로 확산되고 과거 식민지 국가들이 오히려 지배국가를 이기는 양상이 전개되면서 식민지 종주국의 민족정체성에 위기를 초래하기도 했다. 스포츠의 세계화는 토착문화를 파괴하기도 하지만 그것과 갈등을 빚음으로써 개발도상국들에게 민족정체성을 재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임현진, 2002: 15-19; Maguire, 1999: 176-206).
이처럼 세계화와 민족정체성 그리고 스포츠는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문제는 세계화라는 새로운 현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여가실행(leisure practice)에 미치는 사회적 영향력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지에 있다. 먼저 본 논문의 이론적 자원인 기든스의 근대성 이론을 살펴보고, 다음으로 연구방법을 논의하고, 2002 한일 월드컵을 사례로 한 경험적 연구를 한 후에 스포츠의 세계화와 여가실행의 사회적 의미를 규명한다. 마지막으로 전체 연구를 요약하고 그 의의와 한계를 밝힌다.
Ⅱ. 본론
1. 이론적 연구 - 근대사회와 스포츠
1) 근대성과 스포츠
근대사회와 전통사회를 갈라놓는 가장 명백한 특징은 근대성(modernity)의 극단적인 역동성(dynamism)이다. 전통사회보다 훨씬 빠른 변동의 속도와 범위 그리고 깊이 등이 근대사회의 특징이다. 이러한 근대적 사회변동의 역동적 성격은 이하의 세 가지에서 비롯되었다(Giddens, 1990: 17-45; 1991: 14-21; 1999: xi-xii).
첫째는 시공간분리(separation of space from time)다. 전통사회에서 시간에 관한 생각은 항상 장소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이 몇 시인지는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었다. 장소를 통하여 시공간이 연결되어 있었던 전통사회와는 달리 근대사회에서는 현재시간이 어디에 있느냐라는 것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시간의 측정과 사회적 조직화가 전세계적으로 통일됨으로써 시간으로부터 공간이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특정한 장소를 고려하지 않고도 사회적 활동을 조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둘째는 사회제도의 탈고정(disembedding)이다. 탈고정이란 지방의 맥락을 벗어난 사회관계가 시공간을 가로질러서 다시 결합되는 것을 지칭하는 것으로써 근대사회가 도입한 시공간원격화를 더욱 가속화시킨다. 탈고정은 같은 지방에 살고 있지 않는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은 같은 지방 사람들과의 접촉의 중요성을 감소시키고 지리적 제약을 극복하게 한다. 두 가지 유형의 탈고정 기제, 즉 상징적 토큰(symbolic tokens)과 전문가 체계(expert systems)는 시간과 공간을 괄호친다. 상징적 토큰은 서로 만난 적이 없는 무수한 개인들간의 거래를 가능하게 하고, 전문가 체계는 타당성을 확인할 길이 없는 일반인들이 기술적 지식을 사용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성찰성(reflexivity)이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신뢰할 수 있게 되고, 기존의 관행에 얽매이지 않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성찰성은 새로운 지식과 정보에 비추어서 사회활동과 물질관계를 끊임없이 수정하게 한다. 성찰성은 계몽적 사고의 산물이지만, 계몽적 사고에서 비롯된 질서와 통제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리고 지식의 확실성을 손상시킨다. 모든 지식은 지속적인 검열을 받고 또 수정된다. 이것은 지속적인 변동과 불확실성을 생산한다.
근대성이 낳은 시공간분리와 탈고정은 물리적 환경을 경험해야만 물리적 환경을 지각할 수 있는 제한을 최초로 극복했다. 이제 시간은 분할될 수 있게 되었고, 활동들은 상이한 분절들로 할당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공적활동이나 노동을 위한 시간은 가사활동시간으로부터 분리되었고, 일터와 놀이터가 가정으로부터 분리되어 독자적인 공간을 갖게 되었다(Rosenzweig, 1985: 35-49). 중세 말 또는 근세 초에서부터 현재에 이르는 장기간에 걸친 관찰 결과는 이러한 일련의 여가변동 과정이 문명화 과정이었음을 보고하고 있고, 문명화 과정 속에서 여가실행(leisure practice)은 상업화․온순화․사유화․개인화 되었다고 말한다(Elias, 1994; Rojek, 2000: 257-260; 2002: 107-118). 이러한 변동과정은 서구에서 여타 세계로 공간적 확장을 거쳤기 때문에 근대성 하에서 사회변동은 서구화 양상을 띠었다.
근대사회의 여가실행 중 하나인 스포츠 역시 이러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구분되고 공간적으로 분리되었다. 이제 스포츠는 경기장이나 운동장에서 특정한 시간에만 할 수 있게 되었다. 복잡한 경기규칙․페어플레이에 대한 강조․폭력과 감정의 배제 등으로 온순화되고, 프로와 아마추어의 분리․아마추어리즘의 쇠퇴 등으로 상업화되었으며, 관람 스포츠(spectator sport)는 방송과 통신을 이용한 개인적이고 사적인 활동으로 변해갔다. 또한 축구․수영․골프․복싱․경마․럭비․육상․조정․배드민턴․사이클 등 대부분의 근대스포츠는 영국에서 탄생했는데, 영국의 근대스포츠는 여타 서구 유럽을 거쳐 비서구 식민지로 확산되었다. 이처럼 근대성 하에서 스포츠는 영국화와 서구 유럽화를 특징으로 한다.
2) 세계화와 스포츠
근대사회의 역동성으로 말미암아 사회체계는 고도로 불확실하게 되고 행위자는 성찰적이 된다. 확실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들도 자고 일어나면 오류가 있었음이 밝혀지고,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역동적인 사회체계 속에서 수정을 거듭한다. 성찰성은 개인적․제도적 삶의 재생산에 침투하여 일상생활에 대해서 근본적인 의구심을 자아내고, 개인은 더욱 자율적인 존재가 되지만 존재론적 안전을 위협받는다(Giddens, 1991: 183-201; Kaspersen, 2000: 149-151). 이로써 근대성은 초기 형태와 다른 많은 중요한 사회변동을 수반한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서 기든스는 전자를 단순근대성(simple modernity)이라 부르고 후자를 후기 또는 고도근대성(late or high modernity)이라고 명명한다.
고도근대성 하에서 근대성은 세계 도처로 확장되어 곳곳에서 근대적 변동을 일으킨다. 즉, 세계화(globalisation)가 일어난다. 세계화는 근대사회의 역동성의 최종적인 국면이기 때문에 근대성의 결과(consequences of modernity)다. 세계화 경향은 역동적인 근대성 속에 이미 내재되어 있었다. 시공간 원격화와 탈고정 그리고 성찰성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전세계로 확장시키고, 지방과 지구를 상호교차 시킨다(Tucker, 1999: 229-232).
특정 장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생활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사건에 영향을 받아서 형성되는 것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특정한 민족국가에서 벌어진 사건은 해당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는 경우가 허다하게 많아진다. 이 과정에서 인터넷, 위성통신 등과 같은 전자통신의 발전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신속하고 효과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의사소통방식에 변동을 초래하고 사회전체의 편성방식도 바꾼다. 이제 국경의 중요성은 더욱 줄어들고, 민족국가의 권력은 약화된다. 그러나 세계화는 지방 공동체와 민족국가를 파괴하지 않는다. 민족국가가 권력의 일부를 상실한 것은 사실이지만 세계화로 말미암아 지방의 자율성이 증가한 것도 사실이다. 세계화로 말미암아 민족국가가 약화됨으로써 초래된 공백을 대신하여 지방 민족주의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Giddens, 1990: 55-79, 174-178; 1991: 21-23; 1998: 133-138; Giddens & Pierson, 1998: 94-100). 이러한 지방과 지구간의 변증법적 과정으로 말미암아 지구적 문화․경제․정치 권력의 지구적 표준(global standard)을 설정하려는 지구적 시도와 그에 대한 저항이 더욱 강해지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지구적 표준을 설정하려는 시도와 이에 대한 저항으로 말미암아 국경이 불분명해지고 지방의 자율성에 대한 요구가 더욱 강해지고 있다. 민족정체성(national identity)을 재구성해야 할 시점에 도달한 것이다.
따라서 세계화된 세상에서 전적으로 통제되고 일방향적인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과 같은 단일 거대 민족국가 역시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소비문화의 가시적 아이콘들이 모두 미국제품(맥도날드, 코카콜라, 나이키 등)이고, 텔레비전․영화․오락 등 문화산업에서 공급의 형태와 내용 양자(Time-Warner, CNN, News International 등)를 지배하고 있는 것도 미국이다. 뿐만 아니라 상업적인 미국표준(상업적 거래, 위기평가, 법률적 합의와 조정 등의 표준)이 세계화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화는 미국화인 것도 사실이기는 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지구촌 의식, 전세계적 상호의존, 미국화에 대한 저항 등이 생겨나고 있어서 미국화는 문화적 세계화의 한 측면일 뿐 그 자체가 세계화일수는 없다. 온갖 영향들이 뒤섞인 상황 속에서 탈중심화되고 무정부적이며 우연하게 오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세상이 형성되었다(Giddens, 1999: 6-19; Featherstone, 2002: 133-134). 고도근대성 하에서 펼쳐지고 있는 세계화 과정은 미국화와 더불어 유럽화․동양화․아프리카화․남미화 등을 더욱 강화한다. 즉, 세계화 과정은 사람․실천․관습․사고 등의 다방향적 운동과 관련이 있다. 지구적 과정은 다방향적이면서도 권력균형을 이루고 있다. 민족국가를 넘어서는 네트웍과 연결의 급증을 고려하면, 우리는 초국가적 문화와 지구문화의 초기발전 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과정은 에스닉 또는 민족문화로부터 미국문화와 같은 초권력이나 세계주의적 통신과 연결망의 문화에 바탕을 둔 초국가문화로 이행을 수반한다(Maguire, 1999: 37-41). 따라서 차이감소와 다양성증가가 동시에 발생한다.
스포츠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근대성 하에서 서구, 특히 영국은 근대스포츠의 종목․조직․이데올로기․기술 등을 만들고, 그것을 비서구로 확산시키고 또 비서구의 스포츠를 지배했다. 그러나 고도근대성 단계로 접어들면서, 비서구의 문화는 서구의 근대스포츠에 저항하고 또 그것을 재해석했으며, 자신들의 토착스포츠를 지구적 규모로 유지․육성․발전시켰다. 비서구 국가들이 스포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고, 과거의 식민지 국가들이 지배국가를 이기기 시작했다. 태권도․쿵후․유도 등과 같은 무술경기와 스모 같은 비서구의 스포츠가 서구로 확산되었다. 다른 한편, 야구․농구․미식축구 등에서 보듯이 스포츠분야에서도 미국화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스포츠의 미국화가 스포츠의 지구적 동질화를 낳으면 낳을수록 스포츠는 민족적 저항의 수단으로써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스포츠에서도 다양성이 늘어나면서 동시에 차이는 줄어드는 모순적인 과정이 나타나게 되었다(Bairner, 2001: 11-17, 175-177; Maguire, 1999: 86-94).
2. 연구방법 - 비교사례연구
비교연구는 사례를 중심으로 한 연구방법 중에서 핵심적인 것이다. 비교연구방법을 사용하는 사회과학자들은 경험적으로 정의된 것이면서 역사적으로 구체적인 대규모의 사회적 과정에 주로 관심을 갖는다(Ragin, 1987: 12-13). 비교방법은 차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공통적인 측면 또는 가장 유사한 체계접근을 통하여 변수를 통제한다(Can-Seng Ooi, 2002: 12-14).
비교연구에는 분석적 비교(analytical comparison)와 해석적 비교(interpretive comparison) 등의 두 가지 기본적인 분석방법이 있다. 전자는 인과적 설명을 목적으로 하고, 후자는 의미의 문제에 주된 관심을 기울인다. 해석적 비교는 비교논리를 기준으로 해서 개별적 비교논리(individualising logic)와 전체적 비교논리(holistic logic)로 나뉘어진다. 세계체계나 근대성 등과 같이 총체적인 사회형태 비교에는 전체적 비교논리를 사용하고, 개별적 사례의 특수성을 보여줄 때는 개별적 논리를 사용한다(Griffin, 1992: 263-268; Ragin, 1987: 3-7).
비교연구방법에는 일반적으로 상호연관 된 세 가지의 기준이 있다고 피어스는 주장한다. 첫째는 명확하게 정의된 문제에 바탕을 둔 연구문제 설정이고, 둘째는 비교를 위한 개념적 등가물(conceptual equivalent)이며, 셋째는 맥락적 요인(contextual factors)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Can-Seng Ooi, 2002: 12-15; Pearce, 1993: 20-35).
본 연구는 ‘2002 FIFA 한․일 월드컵’을 사례로 하여 여가활동으로써 스포츠의 세계화 과정에 대한 폭 넓은 이해를 목적으로 한다. 연구의 맥락은 근대성의 결과인 고도근대성 하에서 나타나는 세계화과정이며, 비교의 단위는 민족국가이다. 비교분석을 위한 연구문제는 미국화로 대별되는 문화적 동질화와 그에 대한 저항이며, 개념적 등가물은 민족정체성이다. 이 연구를 통해서 세계화는 문화적 동질화와 이질화라는 쟁점에 대해서 어떤 교훈을 던져 주고 있는지 그리고 민족정체성에 어떤 변동을 초래하고 있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따라서 개별적 비교논리에 바탕을 둔 해석적 비교방법을 사용한다.
3. 경험적 연구 - 2002 FIFA 한․일 월드컵
1) 월드컵의 세계화와 문화적 다양성
이론적 연구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스포츠의 세계화에 대한 논의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과 동질화에 대한 것과 민족정체성에 대한 것이다. 스포츠의 세계화는 문화적 다양성을 증대시킨다는 주장과 동질화를 증대시킨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지만, 뉴욕타임스는 문화적 동질성을 증대시킨다는 입장에서 2002 한․일 월드컵을 보도했다.
이번 월드컵은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인 스포츠인 축구에 뭔가 새로운 것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축구강국인 프랑스와 아르헨티나는 당혹감과 절망을 맛보아야 했으며, 만년 약체인 한국과 방글라데시는 축제분위기에 휩싸였다. 세계화는 축구에서도 모든 나라에게 동일한 기회를 제공하는 상황을 창조한다. 축구 개발도상국의 선수들이 축구 선진국으로 가서 고도의 기술을 단련함으로써 기량이 점점 더 평준화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현재의 FIFA 랭킹이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팀과의 경기조차도 예측하기 힘들어 졌다. 프랑스를 2-0으로 물리친 세네갈 국가대표 선수들의 대부분이 프랑스 프로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예증하고 있다. 즉, 기량의 측면에서 단일 지구축구시장이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세계화는 축구 경기스타일도 수렴시킴으로써 동질화된 대중문화와 동일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화가 본격화되기 전만 하더라도 현란한 발재주로 무장한 남미축구와 스피드와 힘을 바탕으로 한 유럽축구는 극적인 대결을 펼쳤다. 그러나 세계화로 말미암아 세상이 무척 작아진 오늘날에는 남미와 유럽이 서로의 장점을 도입함으로써 양자간에 차이는 거의 없어져 버렸다. 이와 같은 축구스타일의 세계화 때문에 브라질은 1994년 월드컵에서 우승하고도 수비위주의 유럽축구를 모방했다는 자국 축구 팬들의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다(A Shrinking World's Cup, The New York Times. 16th June. 2002).
인도의 경우를 보면, 별로 잘 하지 못하는 국가대표팀을 갖고 있으면서도 축구열풍이 불고 있는데, 이것도 세계화와 관련이 있는 새로운 문화 현상이다(Bhattacharya, 2002). 위성 텔레비전이 전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기를 안방으로 끌어들였고, 심지어 인도에서도 그것이 가능해 졌기 때문이다. 또한 기업들이 전세계를 대상으로 폭발적인 마케팅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계축구에 한 발짝 다가서는 것은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고 나이키 셔츠를 입는 것 같은 지구문화의 유행에 한 발짝 다가서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인도사람들이 지단이나 로날도 등과 같은 축구스타를 숭배할 때 그들은 경기에 몰입하는 것만이 아니라 축구회사에 충성을 맹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상에서 간략하게 살펴 본 것처럼, 월드컵의 세계화는 기량을 평준화시키고 경기스타일을 표준화하였으며 스포츠의 상업화를 가져왔다는 것이 뉴욕타임스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캐나다의 일간지 토론토 스타(Toronto Star)는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즉, ‘스타일의 동질화라는 비용을 지불하기는 했지만 지방선수가 세계최고 리그에서 기량을 연마하는 보상을 받음으로써 작은 나라도 국제적인 성공을 구가할 수 있게 된 것이’ 스포츠 세계화라면, 스포츠 세계화는 다음을 증명해야만 한다. ‘G-8 지도자들은 다국적 기업에게 더 많은 부와 권력 그리고 풍요를 주는 것 이상의 신질서를 창조하는 것이 세계화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다른 한편 세계화는 지구촌 어디에서나 월드컵을 볼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이익과 더 많은 희망을 온 세계가 공유하는 것이라는 증거를 제시해야만 한다. 그래야 작은 나라도 국제적인 성공을 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될 것이다’(Travers, 2002). 토론토 스타는 이와 같은 내용은 칼럼을 보도하면서 한국과 미국의 경기에서 한국을 응원하기 위해 서울 시청 앞을 가득 메운 ‘붉은 악마’의 사진을 함께 실었다. 이 사진은 스포츠 세계화 덕분에 국제적인 성공을 달성할 수 있게된 작은 나라가 한국이고, 세계화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는 일에 급급하지 말아야 할 나라가 미국임을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인도의 사례를 통해 보도한 것처럼, 축구의 세계화는 스포츠의 상업화를 더욱 강화했으며 거의 모든 축구경기를 지구촌 곳곳에서 24시간 즐길 수 있게 했다. 그러나 1994년 이전까지 월드컵은 전 세계인의 축제가 아니었다. 명칭만 월드컵이었지 실제로는 ‘유로-라틴 아메리카 컵’이었기 때문이다. 이 또한 1994 미국 월드컵을 계기로 북미로 확산되고, 2002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아시아도 포함되었다. 2010년에는 아프리카가 포함됨으로써 지역적 배제가 철폐되고 전 지구적 확장이 달성될 것이다. 월드컵 축구가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지구적 스포츠(global sport)의 맥락에서 경기의 규칙과 절차 그리고 대회의 운영과 조직에서 일종의 보편화도 초래되고 있다(임현진․윤상철, 2002: 1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드컵은 경기스타일의 표준화를 초래하지 않았다. 한국팀의 준결승 진출을 충격과 이변이라고 보도했던 외신들은 한국팀이 새로운 스타일의 축구를 보여주었다면서, 지칠줄 모르는 체력(키커), 팀워크(BBC), 끝없는 에너지(워싱턴포스트), 긍정적인 자세(파이낸셜타임스) 등의 분석을 내 놓았다. 독일의 축구전문지 키커(Kicker)는 한국식 축구에 “파워축구”(Powerfussball)라는 이름을 붙였다(박해현․전병권, 2002). 창과 방패로 비유되는 남미스타일과 유럽스타일의 축구가 있는 것처럼, 경험과 섬세함의 부족을 끈기와 단결력으로 극복하면서 90분 내내 선수 전원이 잠시도 쉬지 않고 경기장을 달리는 한국스타일의 축구가 있다. 이제 아프리카스타일과 북미스타일의 축구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도 두고 볼 일이다.
다양성의 증대는 축구스타일 뿐만 아니라 응원방식에서도 나타났다. 1.5톤짜리 대형 태극기, 매 경기마다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하는 카드섹션 등 ‘붉은 악마’의 응원 방식은 기존의 축구선진국 응원방식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것이었다. 시내 곳곳의 광장을 가득 메운 응원인파는 군부독재정권이나 구 동구공산국가의 경우에서 경험하고 보았던 것처럼 동원된 군중이 아니었다. 시민사회 주도하에 2천 2백만의 자발적이고 시민적인 참여를 이끌어 낸 것이다. 한국에서 붉은 색 염료를 바닥나게 만든 이천만 장의 Be the Reds 셔츠는 나이키가 만든 것도 아니고 코카콜라가 후원해서 무료로 배포한 것도 아니다. 모든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구입한 것이다.
2) 월드컵과 민족정체성
민족정체성은 특정 스포츠 또는 스포츠 국가대표팀의 운명과 불가분의 결합을 맺는다. 스포츠는 민족정체성의 구성과 재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포츠를 통한 국가간 경쟁에서 승리 또는 패배는 민족의 흥망성쇠를 검증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구실을 한다. 고도근대성 하에서 세계화는 지방과 지구간의 긴장과 균형을 유발하는데, 여기에서 민족정체성과 민족문화와 관련된 문제가 제기된다(Maguire, 1999: 177-181). ‘민족정체성은 더욱 강화되고 있는가 아니면 더 약화되고 있는가? 민족문화는 동질화되고 있는가 아니면 이질화되고 있는가?'
민족정체성과 관련해서 가장 전형적인 사례는 6월 10일에 열렸던 한국과 미국의 경기 그리고 한국대표팀 응원단 붉은 악마다. 먼저 민족정체성 문제와 관련해서 미국과의 경기를 주목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길거리 응원이다. 원래는 시청 앞이 아닌 광화문에서 했었다. 폴란드와의 첫 경기가 있었던 6월 4일에는 시청에 응원인파가 없었고 광화문에만 있었던 것이 이를 증명한다. 시청 앞이 응원장소로 사용된 것은 미국과의 경기가 있었던 6월 10일부터인데, 거리응원이 반미시위로 이어지는 것을 차단할 목적으로 인파를 분산하기 위해서 정부와 서울시가 기획한 장소였다(이동연, 2002: 174-175). 서울시와 정부는 한국이 미국과의 경기에서 지면 한국 대표팀 응원단의 반미감정이 일 순간에 폭발하여 미국대사관이 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따라서 서울시와 정부는 광화문에 있는 미국대사관을 경비하는 경찰력을 대폭 증강시켰다. 다행히(?) 경기는 비겼고 아무런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았다.
둘째는 한국 선수들의 골 세러모니다. 후반 32분경 동점골을 넣은 안정환은 4개월 전 미국 솔트 레이크 시티에서 열린 2002 동계 올림픽 남자 1,500미터 쇼트트랙 결승경기에서 심판의 오심을 유도한 일본계 미국인 아폴로 오노의 허리우드 액션으로 금메달을 빼앗긴 사건을 골 세러모니로 보여주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안정환이 넣은 한 골은 한국인의 긍지를 위한 것이었고, 축구는 한국인의 자아․자존심․민족적 자부심이며, 한국은 스포츠를 민족 정체성 문제로 전환했는데 이러한 희망을 담은 응원 “대한민국”(Great Republic of Korea)은 미국과의 경기에서 동점골이 터졌을 때 월드컵 구장에 메아리 쳤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한국인의 염원과는 반대로 박지성이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후반 24분 경에 넣은 골 때문에 미국이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한국인은 미국과 함께 16강 진출을 축하할 수 있다”는 한 시민의 말을 인용하면서 승리는 한국인을 더욱 성숙하게 했다는 말을 덧붙였다(Beech, 2002: 48). 즉, 미국인 기자는 월드컵 경기를 통해서 한국인의 민족정체성이 극명하게 부각이 되었지만 이것이 근본주의적 민족주의는 아니었다고 보도했다.
폭력사태는 민족정체성이 근본주의적인지 아니면 세계주의적인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되기도 한다. 근본주의는 전통을 전통적인 방식으로만 방어할 수 있기 때문에 근대성의 역동적 메커니즘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Giddens, 1990: 36-45, 174-178; 1999: 36-48; Robertson, 1992: 164-181). 따라서 근본주의는 폭력에 의지하게 된다. 일부 중동 국가에서 볼 수 있는 종교 근본주의(religious fundamentalism)가 폭력적인 양상을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 기간 중에 볼 수 있었던 한국인의 강한 민족정체성은 근본주의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세계주의적(cosmopolitanism) 지구정체성(global identity)의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즉, 한국인의 민족정체성은 자신이 속한 지방의 관심에 국한되지 않고 지구적 소속감․참여․책임 등을 인식하고 있으며, 이러한 관심을 일상생활의 실천에 통합시킨 문화적 지향을 보여 준 것(Tomlinson, 1999: 184-187)이 이번 월드컵이었다.
다음은 한국대표팀 응원단 붉은 악마다. 붉은 악마가 사용한 다양한 상징은 2천 2백만에 달하는 인파를 거리로 끌어 낸 동원기제로 작용했다. 김종엽은 동원기제가 작동할 수 있도록 한 초기조건의 형성요인을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지적한다(2002: 46-48). 먼저 붉은 악마 주도에 의한 길거리 응원문화가 존재했었고, 다음으로 대규모 군중의 운집을 허용할 수 있는 정치적 정당성을 갖춘 정부가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상업적인 목적으로 설치된 전광판이라는 초기조건이 갖추어져 있었다. 즉, 시민사회와 국가 그리고 자본 등 모든 사회세력의 협력이라는 초기조건이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붉은 악마가 사용한 다양한 상징이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둘째로, 붉은 악마는 다양한 기호와 상징을 이용하여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를 승리로 이끌었기 때문에 국민 두 사람 중 한 명을 거리로 끌어낼 수 있었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초기조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붉은 악마가 사용한 상징이다(김종엽, 2002: 48-53). 이러한 상징들을 대충 살펴보더라도 그 작동기제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한국의 영문표기를 Korea대신 Corea로 하고, 대형 태극기․태극기 패션․태극기 보디 페인팅․페이스 페인팅 등으로 분장하고, 한국의 전통적인 리듬에 맞춰서 대한민국을 외치고, 오 필승 코리아를 열창한다. 그야말로 붉은 악마라는 명칭만 빼고 나면 모든 것이 민족정체성을 강하게 부각시키는 것들이다. 한국인 두 명 중 한 명을 거리로 끌어내는데 성공한 이유는 붉은 악마가 민족 정체성을 기호화함으로써 정체성 정치를 펼쳤기 때문이다.
일본대표팀 응원단 울트라 니폰과 비교해 보면 붉은 악마의 이러한 특징은 더욱 선명해 진다. 한국과 폴란드의 경기가 열렸던 6월 4일 부산구장이 빨간색으로 뒤덮힌 것처럼 같은 날 사이타마구장은 일본과 벨기에의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서 모인 울트라 니폰으로 파랗게 물들었다. 아시아 지역 최초의 월드컵 공동개최국인 한국과 일본은 이 날 응원단의 색깔로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또한 붉은 악마는 중앙 응원조직이 있지만, 울트라 니폰은 중앙 응원조직이 없다는 데에서도 차이가 난다. 붉은 악마는 애국가가 제창될 때마다 대형 태극기를 펼친다. 그러나 울트라 니폰은 기미가요를 따라 부르지 않고, 히노마루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붉은 악마는 한국 내 지역정체성을 보이지 않지만, 울트라 니폰은 일본 내 클럽에 뿌리를 둔 지역정체성을 두드러지게 보인다. 붉은 악마는 한국축구의 자존심을 살릴 수 있는 집단성과 전체성을 강조하지만, 울트라 니폰은 개인 스타 플레이어를 더 좋아한다(이동연, 2002: 166-171). 울트라 니폰은 탈국가적․탈민족적․개인적이지만, 붉은 악마는 민족적․국가주의적․집단적이다.
4. 스포츠의 세계화와 여가의 사회적 의미
근대성 하에서 스포츠가 상업화․온순화․개인화․사유화 등과 같은 변동을 겪은 것처럼 고도 근대성 하에서도 커다란 변동이 진행되고 있다. 전자의 변동을 거치면서 서구에서 근대스포츠가 탄생하고 그것이 비서구 세계로 확산되었다면, 후자의 변동은 관람 스포츠가 갖는 사회적 의미를 크게 바꿔놓고 있다. 서구에서 발생한 스포츠를 비서구의 민족국가들이 토착화함으로써 새로운 경기의 스타일을 창조하기도 하고, 기량면에서 서구의 민족국가를 능가하기도 했다. 또한 서구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민속경기를 개발하여 서구 지역으로 역수출하기도 했다. 서구의 국가들에게 있어서 서구 근대 스포츠 경기에서 비서구 국가에게 패배하는 경험은 민족 정체성의 위기로 이어진다. 반면에 서구 근대 스포츠 경기에서 서구 민족국가를 이긴 비서구 국가들에서는 세계화로 말미암은 민족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 민족적 자긍심과 맞물린다.
2002 FIFA 한․일 월드컵은 스포츠의 세계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으며, 고도 근대성 하에서 여가가 어떤 사회적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극적으로 부각시킨 메가이벤트였다. 대회의 조직과 운영 그리고 경기의 규칙과 절차가 보편화되었다. 미국의 거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스포츠의 상업화가 더욱 강화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월드컵에서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는 한국 국가대표팀이 서구의 열강들을 물리치고 준결승에 진출했을 때 전국의 거리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수비형의 남미축구와 공격형의 유럽축구와는 다른 새로운 스타일의 한국형 파워축구가 탄생하기도 했다. 국가대표팀 응원단 붉은 악마는 태극기․카드섹션 등을 이용하여 민족 정체성을 상징화한 새로운 응원문화를 창출하면서 전국민을 하나로 묶어 냈다. 언론은 축구경기 그 자체와 함께 한국의 독특한 응원문화에 관심을 보임으로써 광화문을 가득 메운 붉은 악마는 2002 FIFA 한․일 월드컵을 상징하는 기호로 작동했다. 한국의 시민단체가 언론의 보도에 촉각을 곤두세운 것이 아니라 언론이 시민단체의 행보를 예의 주시하는 역현상이 벌어졌다.
거대자본은 스포츠를 상업화함으로써 경제적 지배의 수단으로 만들었지만, 붉은 악마는 민족 정체성을 상징화함으로써 월드컵 경기를 문화적 저항의 장으로 전환시켰다. 세계화와 지방화, 스포츠의 경제적 세계화와 문화적 세계화, 경제적 지배와 문화적 저항 등으로 말미암아 지배와 저항간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따라서 여가활동으로써 관람 스포츠가 갖는 사회적 의미는 ‘지배와 저항의 변증법’이라고 할 수 있다. 지배와 저항이 ‘민족 정체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고도 근대성 하에서 여가는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로써의 특성을 띄고 있으며, 이는 문화적 차이를 줄이면서 동시에 다양성을 늘여놓았다.
Ⅲ. 결론
이상의 연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이론적 연구를 요약하면, 근대 스포츠는 서구에서 비서구로 일방적으로 확장되었기 때문에 근대화는 스포츠의 다양성과 민족적 특성을 줄이는 역할을 했다. 따라서 근대성 하에서 스포츠는 서구화를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고도 근대성 하에서 세계화 과정은 스포츠의 다방향적 흐름을 낳았다. 비서구 지역에서도 전통적인 민속놀이가 스포츠로 개발되고 이것이 서구 지역으로 흘러 들어간다. 뿐만 아니라 서구의 근대 스포츠를 비서구 지역들이 독특한 스타일로 토착화했다. 근대성 하에서 서구의 민족국가들은 근대 스포츠를 형성하고 비서구 민족국가들에게로 확산시킴으로써 스포츠에서도 성공과 지배를 구가했다. 그러나 고도 근대성 하에서 비서구 민족국가들은 서구적 스포츠 경기에서도 서구 민족국가를 이기기 시작함으로써 서구 민족국가들에게 정체성 위기를 초래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스포츠의 세계화는 서구와 비서구간의 문화적 차이를 감소시키면서 동시에 문화적 다양성을 증가시켰다.
다음으로 경험적 연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002 FIFA 한일 월드컵을 스포츠의 세계화라는 관점에서 보도한 뉴욕타임스는 세계화로 말미암아 축구선수의 기량이 평준화되고 경기스타일이 수렴되었으며 월드컵은 상업화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종래의 유럽형과 남미형뿐만 아니라 한국형 파워축구가 개발되어 첫 선을 보였으며, 자발적이고 비상업적인 시민사회주도의 새로운 응원문화가 펼쳐졌다. 한국과 미국의 경기, 선수들의 골 세레모니 그리고 붉은 악마의 응원문화에서 확연하게 보았던 것처럼 세계화과정으로 말미암아 스포츠는 민족정체성의 경연장이 되었다. 거대한 지구자본에 의한 스포츠의 상업화가 진행되기도 했지만, 민족정체성을 기호화함으로써 문화적 저항이 펼쳐지기도 했다. 따라서 여가활동으로써 관람 스포츠는 세계화과정 속에서 지배와 저항의 정체성 정치가 펼쳐지는 장이라는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본 논문은 고도근대성 하에서 더욱 심화되고 있는 세계화 과정 속에서 여가실행의 사회적 의미를 연구한 최초 논문이라는 의의를 갖고 있지만, 질적 연구가 갖는 일반적 한계도 동시에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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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와 여가의 사회적 의미: 2002 한․일 월드컵을 중심으로
The Meaning of Leisure Practice under Globalisation: 2002 Korea-Japan World Cup
Abstract
It's almost impossible to understand local or national experiences without reference to globalisation process. The globalisation of sport have impact on the embodied national identities and this is embedded in local and national cultural processes. The game style and supporting culture seemed utterly distant from standardisation and homogenisation. Korean style power soccer had been created by the Korean national football squad and the sporting event had been changed into the representational space of national identities. What had been observed is that sport as a leisure practice in globalisation and national identity formation plays contradictory role, diminishing contrasts and increasing varieties.
핵심용어: 세계화, 여가, 민족정체성, 차이감소, 다양성 증가
Ⅰ. 서론
고도근대성 하에서 세계화는 전 세계의 모든 문화를 동시에 유통시킴으로써 민족국가의 문화적 일관성을 약화시키고 민족정체성에 혼동(dislocation)을 초래한다. 혼동으로 야기된 정체성 위기에 대처하면서 행위자들의 성찰성(reflexivity)도 증대한다. 지구시장에서 소비하는 문화생산물에 대해서 사람들은 나름대로 해석을 하고 또 능동적으로 사용한다. 이 과정에서 무한하게 다양한 다름과 같음 간의 경쟁이 펼쳐지고, 차이가 줄어들면서도 다양성이 증가하는 모순적인 양상이 전개된다. 그러므로 동질화와 이질화, 획일성과 다양성, 지구정체성과 민족정체성, 통합과 분열 등의 문제는 어느 한 쪽을 선택하는 문제도 아니거니와 별개로 전개되고 있는 동전의 양면도 아니다. 양자는 서로 교차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지점에서 균형(balances)과 융합(blends)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것이 어떻게 변동해 왔으며 어떻게 변동할 것인지 등이 문젯거리로 등장한다(Bairner, 2001: 6-16; Jarvie & Maguire, 1994: 250-256; Maguire, 1999: 36-56, 84-92). 이처럼 고도근대성 하에서 세계화는 다원적이고 다문화적인 민족정체성의 재구성을 요청하고 있으며, 이 점에 있어서 미국도 예외일 수 없다. 피자나 케밥이 빅맥보다 미국적이 아니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미국이 지구적 표준을 생산하고 그것을 전세계로 확산시켜서 지구적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만큼 미국은 전세계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다. 따라서 동양과 서양, 한국과 영국간에 문화적 차이는 줄어들면서도 미국화 뿐만 아니라 유럽화․동양화․아프리카화․남미화 등이 동시에 발생해서 다양성이 더욱 증가하는 양상이 전개된다.
스포츠 역시 세계화됨으로써 커다란 변동의 과정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고 있다. 근대성 하에서 영국화와 서구화는 근대스포츠를 국제적으로 확산시켰다. 고도근대성(또는 후기근대성) 하에서 세계화는 스포츠의 미국화를 초래하여 세계문화의 동질화시켰지만 다른 한편으로 미국화에 대한 저항을 낳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동양의 스포츠가 미국과 유럽으로 확산되고 과거 식민지 국가들이 오히려 지배국가를 이기는 양상이 전개되면서 식민지 종주국의 민족정체성에 위기를 초래하기도 했다. 스포츠의 세계화는 토착문화를 파괴하기도 하지만 그것과 갈등을 빚음으로써 개발도상국들에게 민족정체성을 재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임현진, 2002: 15-19; Maguire, 1999: 176-206).
이처럼 세계화와 민족정체성 그리고 스포츠는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문제는 세계화라는 새로운 현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여가실행(leisure practice)에 미치는 사회적 영향력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지에 있다. 먼저 본 논문의 이론적 자원인 기든스의 근대성 이론을 살펴보고, 다음으로 연구방법을 논의하고, 2002 한일 월드컵을 사례로 한 경험적 연구를 한 후에 스포츠의 세계화와 여가실행의 사회적 의미를 규명한다. 마지막으로 전체 연구를 요약하고 그 의의와 한계를 밝힌다.
Ⅱ. 본론
1. 이론적 연구 - 근대사회와 스포츠
1) 근대성과 스포츠
근대사회와 전통사회를 갈라놓는 가장 명백한 특징은 근대성(modernity)의 극단적인 역동성(dynamism)이다. 전통사회보다 훨씬 빠른 변동의 속도와 범위 그리고 깊이 등이 근대사회의 특징이다. 이러한 근대적 사회변동의 역동적 성격은 이하의 세 가지에서 비롯되었다(Giddens, 1990: 17-45; 1991: 14-21; 1999: xi-xii).
첫째는 시공간분리(separation of space from time)다. 전통사회에서 시간에 관한 생각은 항상 장소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이 몇 시인지는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었다. 장소를 통하여 시공간이 연결되어 있었던 전통사회와는 달리 근대사회에서는 현재시간이 어디에 있느냐라는 것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시간의 측정과 사회적 조직화가 전세계적으로 통일됨으로써 시간으로부터 공간이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특정한 장소를 고려하지 않고도 사회적 활동을 조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둘째는 사회제도의 탈고정(disembedding)이다. 탈고정이란 지방의 맥락을 벗어난 사회관계가 시공간을 가로질러서 다시 결합되는 것을 지칭하는 것으로써 근대사회가 도입한 시공간원격화를 더욱 가속화시킨다. 탈고정은 같은 지방에 살고 있지 않는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은 같은 지방 사람들과의 접촉의 중요성을 감소시키고 지리적 제약을 극복하게 한다. 두 가지 유형의 탈고정 기제, 즉 상징적 토큰(symbolic tokens)과 전문가 체계(expert systems)는 시간과 공간을 괄호친다. 상징적 토큰은 서로 만난 적이 없는 무수한 개인들간의 거래를 가능하게 하고, 전문가 체계는 타당성을 확인할 길이 없는 일반인들이 기술적 지식을 사용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성찰성(reflexivity)이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신뢰할 수 있게 되고, 기존의 관행에 얽매이지 않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성찰성은 새로운 지식과 정보에 비추어서 사회활동과 물질관계를 끊임없이 수정하게 한다. 성찰성은 계몽적 사고의 산물이지만, 계몽적 사고에서 비롯된 질서와 통제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리고 지식의 확실성을 손상시킨다. 모든 지식은 지속적인 검열을 받고 또 수정된다. 이것은 지속적인 변동과 불확실성을 생산한다.
근대성이 낳은 시공간분리와 탈고정은 물리적 환경을 경험해야만 물리적 환경을 지각할 수 있는 제한을 최초로 극복했다. 이제 시간은 분할될 수 있게 되었고, 활동들은 상이한 분절들로 할당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공적활동이나 노동을 위한 시간은 가사활동시간으로부터 분리되었고, 일터와 놀이터가 가정으로부터 분리되어 독자적인 공간을 갖게 되었다(Rosenzweig, 1985: 35-49). 중세 말 또는 근세 초에서부터 현재에 이르는 장기간에 걸친 관찰 결과는 이러한 일련의 여가변동 과정이 문명화 과정이었음을 보고하고 있고, 문명화 과정 속에서 여가실행(leisure practice)은 상업화․온순화․사유화․개인화 되었다고 말한다(Elias, 1994; Rojek, 2000: 257-260; 2002: 107-118). 이러한 변동과정은 서구에서 여타 세계로 공간적 확장을 거쳤기 때문에 근대성 하에서 사회변동은 서구화 양상을 띠었다.
근대사회의 여가실행 중 하나인 스포츠 역시 이러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구분되고 공간적으로 분리되었다. 이제 스포츠는 경기장이나 운동장에서 특정한 시간에만 할 수 있게 되었다. 복잡한 경기규칙․페어플레이에 대한 강조․폭력과 감정의 배제 등으로 온순화되고, 프로와 아마추어의 분리․아마추어리즘의 쇠퇴 등으로 상업화되었으며, 관람 스포츠(spectator sport)는 방송과 통신을 이용한 개인적이고 사적인 활동으로 변해갔다. 또한 축구․수영․골프․복싱․경마․럭비․육상․조정․배드민턴․사이클 등 대부분의 근대스포츠는 영국에서 탄생했는데, 영국의 근대스포츠는 여타 서구 유럽을 거쳐 비서구 식민지로 확산되었다. 이처럼 근대성 하에서 스포츠는 영국화와 서구 유럽화를 특징으로 한다.
2) 세계화와 스포츠
근대사회의 역동성으로 말미암아 사회체계는 고도로 불확실하게 되고 행위자는 성찰적이 된다. 확실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들도 자고 일어나면 오류가 있었음이 밝혀지고,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역동적인 사회체계 속에서 수정을 거듭한다. 성찰성은 개인적․제도적 삶의 재생산에 침투하여 일상생활에 대해서 근본적인 의구심을 자아내고, 개인은 더욱 자율적인 존재가 되지만 존재론적 안전을 위협받는다(Giddens, 1991: 183-201; Kaspersen, 2000: 149-151). 이로써 근대성은 초기 형태와 다른 많은 중요한 사회변동을 수반한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서 기든스는 전자를 단순근대성(simple modernity)이라 부르고 후자를 후기 또는 고도근대성(late or high modernity)이라고 명명한다.
고도근대성 하에서 근대성은 세계 도처로 확장되어 곳곳에서 근대적 변동을 일으킨다. 즉, 세계화(globalisation)가 일어난다. 세계화는 근대사회의 역동성의 최종적인 국면이기 때문에 근대성의 결과(consequences of modernity)다. 세계화 경향은 역동적인 근대성 속에 이미 내재되어 있었다. 시공간 원격화와 탈고정 그리고 성찰성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전세계로 확장시키고, 지방과 지구를 상호교차 시킨다(Tucker, 1999: 229-232).
특정 장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생활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사건에 영향을 받아서 형성되는 것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특정한 민족국가에서 벌어진 사건은 해당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는 경우가 허다하게 많아진다. 이 과정에서 인터넷, 위성통신 등과 같은 전자통신의 발전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신속하고 효과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의사소통방식에 변동을 초래하고 사회전체의 편성방식도 바꾼다. 이제 국경의 중요성은 더욱 줄어들고, 민족국가의 권력은 약화된다. 그러나 세계화는 지방 공동체와 민족국가를 파괴하지 않는다. 민족국가가 권력의 일부를 상실한 것은 사실이지만 세계화로 말미암아 지방의 자율성이 증가한 것도 사실이다. 세계화로 말미암아 민족국가가 약화됨으로써 초래된 공백을 대신하여 지방 민족주의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Giddens, 1990: 55-79, 174-178; 1991: 21-23; 1998: 133-138; Giddens & Pierson, 1998: 94-100). 이러한 지방과 지구간의 변증법적 과정으로 말미암아 지구적 문화․경제․정치 권력의 지구적 표준(global standard)을 설정하려는 지구적 시도와 그에 대한 저항이 더욱 강해지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지구적 표준을 설정하려는 시도와 이에 대한 저항으로 말미암아 국경이 불분명해지고 지방의 자율성에 대한 요구가 더욱 강해지고 있다. 민족정체성(national identity)을 재구성해야 할 시점에 도달한 것이다.
따라서 세계화된 세상에서 전적으로 통제되고 일방향적인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과 같은 단일 거대 민족국가 역시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소비문화의 가시적 아이콘들이 모두 미국제품(맥도날드, 코카콜라, 나이키 등)이고, 텔레비전․영화․오락 등 문화산업에서 공급의 형태와 내용 양자(Time-Warner, CNN, News International 등)를 지배하고 있는 것도 미국이다. 뿐만 아니라 상업적인 미국표준(상업적 거래, 위기평가, 법률적 합의와 조정 등의 표준)이 세계화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화는 미국화인 것도 사실이기는 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지구촌 의식, 전세계적 상호의존, 미국화에 대한 저항 등이 생겨나고 있어서 미국화는 문화적 세계화의 한 측면일 뿐 그 자체가 세계화일수는 없다. 온갖 영향들이 뒤섞인 상황 속에서 탈중심화되고 무정부적이며 우연하게 오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세상이 형성되었다(Giddens, 1999: 6-19; Featherstone, 2002: 133-134). 고도근대성 하에서 펼쳐지고 있는 세계화 과정은 미국화와 더불어 유럽화․동양화․아프리카화․남미화 등을 더욱 강화한다. 즉, 세계화 과정은 사람․실천․관습․사고 등의 다방향적 운동과 관련이 있다. 지구적 과정은 다방향적이면서도 권력균형을 이루고 있다. 민족국가를 넘어서는 네트웍과 연결의 급증을 고려하면, 우리는 초국가적 문화와 지구문화의 초기발전 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과정은 에스닉 또는 민족문화로부터 미국문화와 같은 초권력이나 세계주의적 통신과 연결망의 문화에 바탕을 둔 초국가문화로 이행을 수반한다(Maguire, 1999: 37-41). 따라서 차이감소와 다양성증가가 동시에 발생한다.
스포츠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근대성 하에서 서구, 특히 영국은 근대스포츠의 종목․조직․이데올로기․기술 등을 만들고, 그것을 비서구로 확산시키고 또 비서구의 스포츠를 지배했다. 그러나 고도근대성 단계로 접어들면서, 비서구의 문화는 서구의 근대스포츠에 저항하고 또 그것을 재해석했으며, 자신들의 토착스포츠를 지구적 규모로 유지․육성․발전시켰다. 비서구 국가들이 스포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고, 과거의 식민지 국가들이 지배국가를 이기기 시작했다. 태권도․쿵후․유도 등과 같은 무술경기와 스모 같은 비서구의 스포츠가 서구로 확산되었다. 다른 한편, 야구․농구․미식축구 등에서 보듯이 스포츠분야에서도 미국화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스포츠의 미국화가 스포츠의 지구적 동질화를 낳으면 낳을수록 스포츠는 민족적 저항의 수단으로써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스포츠에서도 다양성이 늘어나면서 동시에 차이는 줄어드는 모순적인 과정이 나타나게 되었다(Bairner, 2001: 11-17, 175-177; Maguire, 1999: 86-94).
2. 연구방법 - 비교사례연구
비교연구는 사례를 중심으로 한 연구방법 중에서 핵심적인 것이다. 비교연구방법을 사용하는 사회과학자들은 경험적으로 정의된 것이면서 역사적으로 구체적인 대규모의 사회적 과정에 주로 관심을 갖는다(Ragin, 1987: 12-13). 비교방법은 차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공통적인 측면 또는 가장 유사한 체계접근을 통하여 변수를 통제한다(Can-Seng Ooi, 2002: 12-14).
비교연구에는 분석적 비교(analytical comparison)와 해석적 비교(interpretive comparison) 등의 두 가지 기본적인 분석방법이 있다. 전자는 인과적 설명을 목적으로 하고, 후자는 의미의 문제에 주된 관심을 기울인다. 해석적 비교는 비교논리를 기준으로 해서 개별적 비교논리(individualising logic)와 전체적 비교논리(holistic logic)로 나뉘어진다. 세계체계나 근대성 등과 같이 총체적인 사회형태 비교에는 전체적 비교논리를 사용하고, 개별적 사례의 특수성을 보여줄 때는 개별적 논리를 사용한다(Griffin, 1992: 263-268; Ragin, 1987: 3-7).
비교연구방법에는 일반적으로 상호연관 된 세 가지의 기준이 있다고 피어스는 주장한다. 첫째는 명확하게 정의된 문제에 바탕을 둔 연구문제 설정이고, 둘째는 비교를 위한 개념적 등가물(conceptual equivalent)이며, 셋째는 맥락적 요인(contextual factors)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Can-Seng Ooi, 2002: 12-15; Pearce, 1993: 20-35).
본 연구는 ‘2002 FIFA 한․일 월드컵’을 사례로 하여 여가활동으로써 스포츠의 세계화 과정에 대한 폭 넓은 이해를 목적으로 한다. 연구의 맥락은 근대성의 결과인 고도근대성 하에서 나타나는 세계화과정이며, 비교의 단위는 민족국가이다. 비교분석을 위한 연구문제는 미국화로 대별되는 문화적 동질화와 그에 대한 저항이며, 개념적 등가물은 민족정체성이다. 이 연구를 통해서 세계화는 문화적 동질화와 이질화라는 쟁점에 대해서 어떤 교훈을 던져 주고 있는지 그리고 민족정체성에 어떤 변동을 초래하고 있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따라서 개별적 비교논리에 바탕을 둔 해석적 비교방법을 사용한다.
3. 경험적 연구 - 2002 FIFA 한․일 월드컵
1) 월드컵의 세계화와 문화적 다양성
이론적 연구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스포츠의 세계화에 대한 논의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과 동질화에 대한 것과 민족정체성에 대한 것이다. 스포츠의 세계화는 문화적 다양성을 증대시킨다는 주장과 동질화를 증대시킨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지만, 뉴욕타임스는 문화적 동질성을 증대시킨다는 입장에서 2002 한․일 월드컵을 보도했다.
이번 월드컵은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인 스포츠인 축구에 뭔가 새로운 것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축구강국인 프랑스와 아르헨티나는 당혹감과 절망을 맛보아야 했으며, 만년 약체인 한국과 방글라데시는 축제분위기에 휩싸였다. 세계화는 축구에서도 모든 나라에게 동일한 기회를 제공하는 상황을 창조한다. 축구 개발도상국의 선수들이 축구 선진국으로 가서 고도의 기술을 단련함으로써 기량이 점점 더 평준화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현재의 FIFA 랭킹이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팀과의 경기조차도 예측하기 힘들어 졌다. 프랑스를 2-0으로 물리친 세네갈 국가대표 선수들의 대부분이 프랑스 프로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예증하고 있다. 즉, 기량의 측면에서 단일 지구축구시장이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세계화는 축구 경기스타일도 수렴시킴으로써 동질화된 대중문화와 동일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화가 본격화되기 전만 하더라도 현란한 발재주로 무장한 남미축구와 스피드와 힘을 바탕으로 한 유럽축구는 극적인 대결을 펼쳤다. 그러나 세계화로 말미암아 세상이 무척 작아진 오늘날에는 남미와 유럽이 서로의 장점을 도입함으로써 양자간에 차이는 거의 없어져 버렸다. 이와 같은 축구스타일의 세계화 때문에 브라질은 1994년 월드컵에서 우승하고도 수비위주의 유럽축구를 모방했다는 자국 축구 팬들의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다(A Shrinking World's Cup, The New York Times. 16th June. 2002).
인도의 경우를 보면, 별로 잘 하지 못하는 국가대표팀을 갖고 있으면서도 축구열풍이 불고 있는데, 이것도 세계화와 관련이 있는 새로운 문화 현상이다(Bhattacharya, 2002). 위성 텔레비전이 전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기를 안방으로 끌어들였고, 심지어 인도에서도 그것이 가능해 졌기 때문이다. 또한 기업들이 전세계를 대상으로 폭발적인 마케팅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계축구에 한 발짝 다가서는 것은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고 나이키 셔츠를 입는 것 같은 지구문화의 유행에 한 발짝 다가서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인도사람들이 지단이나 로날도 등과 같은 축구스타를 숭배할 때 그들은 경기에 몰입하는 것만이 아니라 축구회사에 충성을 맹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상에서 간략하게 살펴 본 것처럼, 월드컵의 세계화는 기량을 평준화시키고 경기스타일을 표준화하였으며 스포츠의 상업화를 가져왔다는 것이 뉴욕타임스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캐나다의 일간지 토론토 스타(Toronto Star)는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즉, ‘스타일의 동질화라는 비용을 지불하기는 했지만 지방선수가 세계최고 리그에서 기량을 연마하는 보상을 받음으로써 작은 나라도 국제적인 성공을 구가할 수 있게 된 것이’ 스포츠 세계화라면, 스포츠 세계화는 다음을 증명해야만 한다. ‘G-8 지도자들은 다국적 기업에게 더 많은 부와 권력 그리고 풍요를 주는 것 이상의 신질서를 창조하는 것이 세계화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다른 한편 세계화는 지구촌 어디에서나 월드컵을 볼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이익과 더 많은 희망을 온 세계가 공유하는 것이라는 증거를 제시해야만 한다. 그래야 작은 나라도 국제적인 성공을 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될 것이다’(Travers, 2002). 토론토 스타는 이와 같은 내용은 칼럼을 보도하면서 한국과 미국의 경기에서 한국을 응원하기 위해 서울 시청 앞을 가득 메운 ‘붉은 악마’의 사진을 함께 실었다. 이 사진은 스포츠 세계화 덕분에 국제적인 성공을 달성할 수 있게된 작은 나라가 한국이고, 세계화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는 일에 급급하지 말아야 할 나라가 미국임을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인도의 사례를 통해 보도한 것처럼, 축구의 세계화는 스포츠의 상업화를 더욱 강화했으며 거의 모든 축구경기를 지구촌 곳곳에서 24시간 즐길 수 있게 했다. 그러나 1994년 이전까지 월드컵은 전 세계인의 축제가 아니었다. 명칭만 월드컵이었지 실제로는 ‘유로-라틴 아메리카 컵’이었기 때문이다. 이 또한 1994 미국 월드컵을 계기로 북미로 확산되고, 2002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아시아도 포함되었다. 2010년에는 아프리카가 포함됨으로써 지역적 배제가 철폐되고 전 지구적 확장이 달성될 것이다. 월드컵 축구가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지구적 스포츠(global sport)의 맥락에서 경기의 규칙과 절차 그리고 대회의 운영과 조직에서 일종의 보편화도 초래되고 있다(임현진․윤상철, 2002: 1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드컵은 경기스타일의 표준화를 초래하지 않았다. 한국팀의 준결승 진출을 충격과 이변이라고 보도했던 외신들은 한국팀이 새로운 스타일의 축구를 보여주었다면서, 지칠줄 모르는 체력(키커), 팀워크(BBC), 끝없는 에너지(워싱턴포스트), 긍정적인 자세(파이낸셜타임스) 등의 분석을 내 놓았다. 독일의 축구전문지 키커(Kicker)는 한국식 축구에 “파워축구”(Powerfussball)라는 이름을 붙였다(박해현․전병권, 2002). 창과 방패로 비유되는 남미스타일과 유럽스타일의 축구가 있는 것처럼, 경험과 섬세함의 부족을 끈기와 단결력으로 극복하면서 90분 내내 선수 전원이 잠시도 쉬지 않고 경기장을 달리는 한국스타일의 축구가 있다. 이제 아프리카스타일과 북미스타일의 축구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도 두고 볼 일이다.
다양성의 증대는 축구스타일 뿐만 아니라 응원방식에서도 나타났다. 1.5톤짜리 대형 태극기, 매 경기마다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하는 카드섹션 등 ‘붉은 악마’의 응원 방식은 기존의 축구선진국 응원방식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것이었다. 시내 곳곳의 광장을 가득 메운 응원인파는 군부독재정권이나 구 동구공산국가의 경우에서 경험하고 보았던 것처럼 동원된 군중이 아니었다. 시민사회 주도하에 2천 2백만의 자발적이고 시민적인 참여를 이끌어 낸 것이다. 한국에서 붉은 색 염료를 바닥나게 만든 이천만 장의 Be the Reds 셔츠는 나이키가 만든 것도 아니고 코카콜라가 후원해서 무료로 배포한 것도 아니다. 모든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구입한 것이다.
2) 월드컵과 민족정체성
민족정체성은 특정 스포츠 또는 스포츠 국가대표팀의 운명과 불가분의 결합을 맺는다. 스포츠는 민족정체성의 구성과 재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포츠를 통한 국가간 경쟁에서 승리 또는 패배는 민족의 흥망성쇠를 검증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구실을 한다. 고도근대성 하에서 세계화는 지방과 지구간의 긴장과 균형을 유발하는데, 여기에서 민족정체성과 민족문화와 관련된 문제가 제기된다(Maguire, 1999: 177-181). ‘민족정체성은 더욱 강화되고 있는가 아니면 더 약화되고 있는가? 민족문화는 동질화되고 있는가 아니면 이질화되고 있는가?'
민족정체성과 관련해서 가장 전형적인 사례는 6월 10일에 열렸던 한국과 미국의 경기 그리고 한국대표팀 응원단 붉은 악마다. 먼저 민족정체성 문제와 관련해서 미국과의 경기를 주목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길거리 응원이다. 원래는 시청 앞이 아닌 광화문에서 했었다. 폴란드와의 첫 경기가 있었던 6월 4일에는 시청에 응원인파가 없었고 광화문에만 있었던 것이 이를 증명한다. 시청 앞이 응원장소로 사용된 것은 미국과의 경기가 있었던 6월 10일부터인데, 거리응원이 반미시위로 이어지는 것을 차단할 목적으로 인파를 분산하기 위해서 정부와 서울시가 기획한 장소였다(이동연, 2002: 174-175). 서울시와 정부는 한국이 미국과의 경기에서 지면 한국 대표팀 응원단의 반미감정이 일 순간에 폭발하여 미국대사관이 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따라서 서울시와 정부는 광화문에 있는 미국대사관을 경비하는 경찰력을 대폭 증강시켰다. 다행히(?) 경기는 비겼고 아무런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았다.
둘째는 한국 선수들의 골 세러모니다. 후반 32분경 동점골을 넣은 안정환은 4개월 전 미국 솔트 레이크 시티에서 열린 2002 동계 올림픽 남자 1,500미터 쇼트트랙 결승경기에서 심판의 오심을 유도한 일본계 미국인 아폴로 오노의 허리우드 액션으로 금메달을 빼앗긴 사건을 골 세러모니로 보여주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안정환이 넣은 한 골은 한국인의 긍지를 위한 것이었고, 축구는 한국인의 자아․자존심․민족적 자부심이며, 한국은 스포츠를 민족 정체성 문제로 전환했는데 이러한 희망을 담은 응원 “대한민국”(Great Republic of Korea)은 미국과의 경기에서 동점골이 터졌을 때 월드컵 구장에 메아리 쳤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한국인의 염원과는 반대로 박지성이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후반 24분 경에 넣은 골 때문에 미국이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한국인은 미국과 함께 16강 진출을 축하할 수 있다”는 한 시민의 말을 인용하면서 승리는 한국인을 더욱 성숙하게 했다는 말을 덧붙였다(Beech, 2002: 48). 즉, 미국인 기자는 월드컵 경기를 통해서 한국인의 민족정체성이 극명하게 부각이 되었지만 이것이 근본주의적 민족주의는 아니었다고 보도했다.
폭력사태는 민족정체성이 근본주의적인지 아니면 세계주의적인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되기도 한다. 근본주의는 전통을 전통적인 방식으로만 방어할 수 있기 때문에 근대성의 역동적 메커니즘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Giddens, 1990: 36-45, 174-178; 1999: 36-48; Robertson, 1992: 164-181). 따라서 근본주의는 폭력에 의지하게 된다. 일부 중동 국가에서 볼 수 있는 종교 근본주의(religious fundamentalism)가 폭력적인 양상을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 기간 중에 볼 수 있었던 한국인의 강한 민족정체성은 근본주의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세계주의적(cosmopolitanism) 지구정체성(global identity)의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즉, 한국인의 민족정체성은 자신이 속한 지방의 관심에 국한되지 않고 지구적 소속감․참여․책임 등을 인식하고 있으며, 이러한 관심을 일상생활의 실천에 통합시킨 문화적 지향을 보여 준 것(Tomlinson, 1999: 184-187)이 이번 월드컵이었다.
다음은 한국대표팀 응원단 붉은 악마다. 붉은 악마가 사용한 다양한 상징은 2천 2백만에 달하는 인파를 거리로 끌어 낸 동원기제로 작용했다. 김종엽은 동원기제가 작동할 수 있도록 한 초기조건의 형성요인을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지적한다(2002: 46-48). 먼저 붉은 악마 주도에 의한 길거리 응원문화가 존재했었고, 다음으로 대규모 군중의 운집을 허용할 수 있는 정치적 정당성을 갖춘 정부가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상업적인 목적으로 설치된 전광판이라는 초기조건이 갖추어져 있었다. 즉, 시민사회와 국가 그리고 자본 등 모든 사회세력의 협력이라는 초기조건이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붉은 악마가 사용한 다양한 상징이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둘째로, 붉은 악마는 다양한 기호와 상징을 이용하여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를 승리로 이끌었기 때문에 국민 두 사람 중 한 명을 거리로 끌어낼 수 있었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초기조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붉은 악마가 사용한 상징이다(김종엽, 2002: 48-53). 이러한 상징들을 대충 살펴보더라도 그 작동기제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한국의 영문표기를 Korea대신 Corea로 하고, 대형 태극기․태극기 패션․태극기 보디 페인팅․페이스 페인팅 등으로 분장하고, 한국의 전통적인 리듬에 맞춰서 대한민국을 외치고, 오 필승 코리아를 열창한다. 그야말로 붉은 악마라는 명칭만 빼고 나면 모든 것이 민족정체성을 강하게 부각시키는 것들이다. 한국인 두 명 중 한 명을 거리로 끌어내는데 성공한 이유는 붉은 악마가 민족 정체성을 기호화함으로써 정체성 정치를 펼쳤기 때문이다.
일본대표팀 응원단 울트라 니폰과 비교해 보면 붉은 악마의 이러한 특징은 더욱 선명해 진다. 한국과 폴란드의 경기가 열렸던 6월 4일 부산구장이 빨간색으로 뒤덮힌 것처럼 같은 날 사이타마구장은 일본과 벨기에의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서 모인 울트라 니폰으로 파랗게 물들었다. 아시아 지역 최초의 월드컵 공동개최국인 한국과 일본은 이 날 응원단의 색깔로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또한 붉은 악마는 중앙 응원조직이 있지만, 울트라 니폰은 중앙 응원조직이 없다는 데에서도 차이가 난다. 붉은 악마는 애국가가 제창될 때마다 대형 태극기를 펼친다. 그러나 울트라 니폰은 기미가요를 따라 부르지 않고, 히노마루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붉은 악마는 한국 내 지역정체성을 보이지 않지만, 울트라 니폰은 일본 내 클럽에 뿌리를 둔 지역정체성을 두드러지게 보인다. 붉은 악마는 한국축구의 자존심을 살릴 수 있는 집단성과 전체성을 강조하지만, 울트라 니폰은 개인 스타 플레이어를 더 좋아한다(이동연, 2002: 166-171). 울트라 니폰은 탈국가적․탈민족적․개인적이지만, 붉은 악마는 민족적․국가주의적․집단적이다.
4. 스포츠의 세계화와 여가의 사회적 의미
근대성 하에서 스포츠가 상업화․온순화․개인화․사유화 등과 같은 변동을 겪은 것처럼 고도 근대성 하에서도 커다란 변동이 진행되고 있다. 전자의 변동을 거치면서 서구에서 근대스포츠가 탄생하고 그것이 비서구 세계로 확산되었다면, 후자의 변동은 관람 스포츠가 갖는 사회적 의미를 크게 바꿔놓고 있다. 서구에서 발생한 스포츠를 비서구의 민족국가들이 토착화함으로써 새로운 경기의 스타일을 창조하기도 하고, 기량면에서 서구의 민족국가를 능가하기도 했다. 또한 서구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민속경기를 개발하여 서구 지역으로 역수출하기도 했다. 서구의 국가들에게 있어서 서구 근대 스포츠 경기에서 비서구 국가에게 패배하는 경험은 민족 정체성의 위기로 이어진다. 반면에 서구 근대 스포츠 경기에서 서구 민족국가를 이긴 비서구 국가들에서는 세계화로 말미암은 민족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 민족적 자긍심과 맞물린다.
2002 FIFA 한․일 월드컵은 스포츠의 세계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으며, 고도 근대성 하에서 여가가 어떤 사회적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극적으로 부각시킨 메가이벤트였다. 대회의 조직과 운영 그리고 경기의 규칙과 절차가 보편화되었다. 미국의 거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스포츠의 상업화가 더욱 강화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월드컵에서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는 한국 국가대표팀이 서구의 열강들을 물리치고 준결승에 진출했을 때 전국의 거리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수비형의 남미축구와 공격형의 유럽축구와는 다른 새로운 스타일의 한국형 파워축구가 탄생하기도 했다. 국가대표팀 응원단 붉은 악마는 태극기․카드섹션 등을 이용하여 민족 정체성을 상징화한 새로운 응원문화를 창출하면서 전국민을 하나로 묶어 냈다. 언론은 축구경기 그 자체와 함께 한국의 독특한 응원문화에 관심을 보임으로써 광화문을 가득 메운 붉은 악마는 2002 FIFA 한․일 월드컵을 상징하는 기호로 작동했다. 한국의 시민단체가 언론의 보도에 촉각을 곤두세운 것이 아니라 언론이 시민단체의 행보를 예의 주시하는 역현상이 벌어졌다.
거대자본은 스포츠를 상업화함으로써 경제적 지배의 수단으로 만들었지만, 붉은 악마는 민족 정체성을 상징화함으로써 월드컵 경기를 문화적 저항의 장으로 전환시켰다. 세계화와 지방화, 스포츠의 경제적 세계화와 문화적 세계화, 경제적 지배와 문화적 저항 등으로 말미암아 지배와 저항간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따라서 여가활동으로써 관람 스포츠가 갖는 사회적 의미는 ‘지배와 저항의 변증법’이라고 할 수 있다. 지배와 저항이 ‘민족 정체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고도 근대성 하에서 여가는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로써의 특성을 띄고 있으며, 이는 문화적 차이를 줄이면서 동시에 다양성을 늘여놓았다.
Ⅲ. 결론
이상의 연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이론적 연구를 요약하면, 근대 스포츠는 서구에서 비서구로 일방적으로 확장되었기 때문에 근대화는 스포츠의 다양성과 민족적 특성을 줄이는 역할을 했다. 따라서 근대성 하에서 스포츠는 서구화를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고도 근대성 하에서 세계화 과정은 스포츠의 다방향적 흐름을 낳았다. 비서구 지역에서도 전통적인 민속놀이가 스포츠로 개발되고 이것이 서구 지역으로 흘러 들어간다. 뿐만 아니라 서구의 근대 스포츠를 비서구 지역들이 독특한 스타일로 토착화했다. 근대성 하에서 서구의 민족국가들은 근대 스포츠를 형성하고 비서구 민족국가들에게로 확산시킴으로써 스포츠에서도 성공과 지배를 구가했다. 그러나 고도 근대성 하에서 비서구 민족국가들은 서구적 스포츠 경기에서도 서구 민족국가를 이기기 시작함으로써 서구 민족국가들에게 정체성 위기를 초래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스포츠의 세계화는 서구와 비서구간의 문화적 차이를 감소시키면서 동시에 문화적 다양성을 증가시켰다.
다음으로 경험적 연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002 FIFA 한일 월드컵을 스포츠의 세계화라는 관점에서 보도한 뉴욕타임스는 세계화로 말미암아 축구선수의 기량이 평준화되고 경기스타일이 수렴되었으며 월드컵은 상업화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종래의 유럽형과 남미형뿐만 아니라 한국형 파워축구가 개발되어 첫 선을 보였으며, 자발적이고 비상업적인 시민사회주도의 새로운 응원문화가 펼쳐졌다. 한국과 미국의 경기, 선수들의 골 세레모니 그리고 붉은 악마의 응원문화에서 확연하게 보았던 것처럼 세계화과정으로 말미암아 스포츠는 민족정체성의 경연장이 되었다. 거대한 지구자본에 의한 스포츠의 상업화가 진행되기도 했지만, 민족정체성을 기호화함으로써 문화적 저항이 펼쳐지기도 했다. 따라서 여가활동으로써 관람 스포츠는 세계화과정 속에서 지배와 저항의 정체성 정치가 펼쳐지는 장이라는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본 논문은 고도근대성 하에서 더욱 심화되고 있는 세계화 과정 속에서 여가실행의 사회적 의미를 연구한 최초 논문이라는 의의를 갖고 있지만, 질적 연구가 갖는 일반적 한계도 동시에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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