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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에 대한 깊은 오해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인가? 많은 이들이, 심지어 논술 문제를 출제하는 이들조차도 논술 교육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교육효과는 논리적이고 비판적이며, 창의적인 글쓰기 능력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소리를 높인다. 맞는 말이다. 더군다나 이들이 말하고 있는 효과들 중에서 우리는 창의적인 글쓰기 능력이라는 말 앞에 가슴 뛰는 감동을 만나게 된다. 얼마나 우리는 이 말에 주눅 들어 왔던가. 우리의 교육은 서구의 그것과 달리 대부분 주입식이고 암기식인지라 창의적인 사고를 잘 못해왔다는 말. 얼마나 반복해서 들었고, 또 그렇게 이해하도록 세뇌되어왔던가. 그래서 교육이 계속 정체를 못 벗어나고 사회의 구성원들 역시 주체적이고 창조적이지 못했고, 여전히 이 땅위의 대다수 사람들은 수동적인 존재들로 멈춰 서 있다는 말! 참으로 귀에 못이 박히도록(귀에 못이 박히면 어떻게 될까? 이 말은 엄청난 공포심을 조장하는 참으로 무서운 말이다!) 듣고 또 들었다.
그런데 이 창의적’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특히 논술과 관련해서 ‘창의적인 글쓰기 능력’이 도대체 뭐냐고 질문해 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답변해야 할까? 앞서도 말했듯이 논술은 글쓰기이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논술문제들은 수험생들에게 제시 문을 읽고 문제를 해결할 때 <자신의 의견>을 밝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자신의 의견을 쓰는 것이 바로 창의적인 글쓰기인가? 그런데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세칭 우리가, 그러니까 대학에서 사용되는 창의적인 글쓰기란 일방적으로 베끼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그것은 제시문에 드러난 논증들을 자신의 언어로 재 구술하라는 말이지, 전혀 새로운 내용을 창조하라는 말은 아닌 것이다. 생각해보라. 논술고자 장은 입시를 위한 자리이지, 신춘문예에 응모하는 마당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학생, 학부모, 그리고 교사들마저 이 ‘창의적’이라는 주술을 제대로 풀지 못하여 자꾸 논술을 神話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의적이라 여겨질 만한 모범답안을 찾기에 혈안이 된다. 그래서 들들 달달 볶고 또 볶아 신화화된 창의적 모범답안과 혹시도 있을지 모르는 다양한 변주곡에 대항하기 위한 예비 모범답안을 여기저기 수소문하여(실제로는 주로 논술학원이나 논술교사들로부터) 확보한 뒤 품 안이 아닌 머릿속에 간직한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학교나 학원에서 진행되는 논술 교육은 기술적인 글쓰기 훈련이 아니라 또 다른 모습의 암기교육으로 변질된다. 일반 논술관련 책들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안 그런 책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논술관련 서적들은 입시출제경향을 분석하고 강 항목별로 문제 유형들을 정리하여 어떻게 하면 제시된 문제에 근접한 답안을 쓸 수 있는가를 모범으로 내놓고 있다.
이런 방식 아래에서는 글쓰기 훈련자체가 특별한 의미가 없다. 다양한 주제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 있는 훈련 역시 별 쓸모도 없다. 이제 남은 것은 출제자의 문제 내는 습관이나 경향을 분석해서 그에 필요한 모범답안을 가급적 많이 확보하고 또한 그것을 빠른 시간 안에 머릿속에 집어넣는 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유의 논술 준비는 참으로 무의미하고 또 무모한 짓이기도 하다. 대학에서 수년 혹은 수십 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출제자의 경우 그런 유의 문제준비를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이미 빤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지난 몇 년 동안의 논술고사 시행을 통해 학원식 모범답안의 마술을 처리할 노하우도 확보한 상태이기도 하다. 따라서 앞으로 대학에서 내놓은 논술문제들은 그런 암기식 항목별 모범답안 준비하는 논술대비 능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미사일들을 장착하고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다 바로 기초적인 글쓰기 훈련이다. 그리고 창의적인 글쓰기에 대한 정확한 이해이다. 이미 앞에서도 밝혔듯이 논술에서 말하는 창의적인 글쓰기는 문학적 글쓰기와는 다르다. 시를 짓고, 소설을 쓰고, 수필을 적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분명히 제시된 지문들이 있고, 그 지문들의 입장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적어내는 것이 현 한국의 논술스타일이다. 여기서 요청되는 창의적이라는 것은 따라서 제시된 지문의 내용을 나의 언어로 바꾸는 훈련이다. 이는 일종의 문장 바꾸기 훈련(Paraphrasing)이다. 지문에 있는 내용이 제 아무리 중요하고, 또 글을 쓰고 있는 이가 그에 대하여 백번 공감하고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그대로 가져오면 그건 ‘표절’이다! 그리고 표절이 되는 순간, 그것으로 그 시험은 끝이다. 표절은 돌이킬 수 없는 범죄행위가 되고, 입시에서 그것은 부정행위와 거의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실상 논술문제의 답안은 사실 많은 부분 예로 주어진 제시문 안에 그대로 숨어있는데, 문제는 그 살아있는 답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훈련을 우리 학생들이 제대로 받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만약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된다면 논술이라고 하는 것만큼 쉬운 것도 없다. 답은 이미 문제에 나와 있는 것이나 다를 바 없고, 시험에 임한 이는 이제 그것을 타인에게 소통가능한 분명한 언어로 써나가기만 하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인가? 많은 이들이, 심지어 논술 문제를 출제하는 이들조차도 논술 교육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교육효과는 논리적이고 비판적이며, 창의적인 글쓰기 능력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소리를 높인다. 맞는 말이다. 더군다나 이들이 말하고 있는 효과들 중에서 우리는 창의적인 글쓰기 능력이라는 말 앞에 가슴 뛰는 감동을 만나게 된다. 얼마나 우리는 이 말에 주눅 들어 왔던가. 우리의 교육은 서구의 그것과 달리 대부분 주입식이고 암기식인지라 창의적인 사고를 잘 못해왔다는 말. 얼마나 반복해서 들었고, 또 그렇게 이해하도록 세뇌되어왔던가. 그래서 교육이 계속 정체를 못 벗어나고 사회의 구성원들 역시 주체적이고 창조적이지 못했고, 여전히 이 땅위의 대다수 사람들은 수동적인 존재들로 멈춰 서 있다는 말! 참으로 귀에 못이 박히도록(귀에 못이 박히면 어떻게 될까? 이 말은 엄청난 공포심을 조장하는 참으로 무서운 말이다!) 듣고 또 들었다.
그런데 이 창의적’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특히 논술과 관련해서 ‘창의적인 글쓰기 능력’이 도대체 뭐냐고 질문해 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답변해야 할까? 앞서도 말했듯이 논술은 글쓰기이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논술문제들은 수험생들에게 제시 문을 읽고 문제를 해결할 때 <자신의 의견>을 밝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자신의 의견을 쓰는 것이 바로 창의적인 글쓰기인가? 그런데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세칭 우리가, 그러니까 대학에서 사용되는 창의적인 글쓰기란 일방적으로 베끼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그것은 제시문에 드러난 논증들을 자신의 언어로 재 구술하라는 말이지, 전혀 새로운 내용을 창조하라는 말은 아닌 것이다. 생각해보라. 논술고자 장은 입시를 위한 자리이지, 신춘문예에 응모하는 마당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학생, 학부모, 그리고 교사들마저 이 ‘창의적’이라는 주술을 제대로 풀지 못하여 자꾸 논술을 神話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의적이라 여겨질 만한 모범답안을 찾기에 혈안이 된다. 그래서 들들 달달 볶고 또 볶아 신화화된 창의적 모범답안과 혹시도 있을지 모르는 다양한 변주곡에 대항하기 위한 예비 모범답안을 여기저기 수소문하여(실제로는 주로 논술학원이나 논술교사들로부터) 확보한 뒤 품 안이 아닌 머릿속에 간직한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학교나 학원에서 진행되는 논술 교육은 기술적인 글쓰기 훈련이 아니라 또 다른 모습의 암기교육으로 변질된다. 일반 논술관련 책들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안 그런 책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논술관련 서적들은 입시출제경향을 분석하고 강 항목별로 문제 유형들을 정리하여 어떻게 하면 제시된 문제에 근접한 답안을 쓸 수 있는가를 모범으로 내놓고 있다.
이런 방식 아래에서는 글쓰기 훈련자체가 특별한 의미가 없다. 다양한 주제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 있는 훈련 역시 별 쓸모도 없다. 이제 남은 것은 출제자의 문제 내는 습관이나 경향을 분석해서 그에 필요한 모범답안을 가급적 많이 확보하고 또한 그것을 빠른 시간 안에 머릿속에 집어넣는 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유의 논술 준비는 참으로 무의미하고 또 무모한 짓이기도 하다. 대학에서 수년 혹은 수십 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출제자의 경우 그런 유의 문제준비를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이미 빤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지난 몇 년 동안의 논술고사 시행을 통해 학원식 모범답안의 마술을 처리할 노하우도 확보한 상태이기도 하다. 따라서 앞으로 대학에서 내놓은 논술문제들은 그런 암기식 항목별 모범답안 준비하는 논술대비 능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미사일들을 장착하고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다 바로 기초적인 글쓰기 훈련이다. 그리고 창의적인 글쓰기에 대한 정확한 이해이다. 이미 앞에서도 밝혔듯이 논술에서 말하는 창의적인 글쓰기는 문학적 글쓰기와는 다르다. 시를 짓고, 소설을 쓰고, 수필을 적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분명히 제시된 지문들이 있고, 그 지문들의 입장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적어내는 것이 현 한국의 논술스타일이다. 여기서 요청되는 창의적이라는 것은 따라서 제시된 지문의 내용을 나의 언어로 바꾸는 훈련이다. 이는 일종의 문장 바꾸기 훈련(Paraphrasing)이다. 지문에 있는 내용이 제 아무리 중요하고, 또 글을 쓰고 있는 이가 그에 대하여 백번 공감하고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그대로 가져오면 그건 ‘표절’이다! 그리고 표절이 되는 순간, 그것으로 그 시험은 끝이다. 표절은 돌이킬 수 없는 범죄행위가 되고, 입시에서 그것은 부정행위와 거의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실상 논술문제의 답안은 사실 많은 부분 예로 주어진 제시문 안에 그대로 숨어있는데, 문제는 그 살아있는 답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훈련을 우리 학생들이 제대로 받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만약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된다면 논술이라고 하는 것만큼 쉬운 것도 없다. 답은 이미 문제에 나와 있는 것이나 다를 바 없고, 시험에 임한 이는 이제 그것을 타인에게 소통가능한 분명한 언어로 써나가기만 하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