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사람이 만든 것... 에바 오딧세이



A Human Work...

줄거리

일곱 번째의 이야기는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이카리 사령관의 모습과 함께 시작된다. 나지막이 들려오는 두 사람의 대화는 상당한 수준의 긴장을 복선으로 깔고 있다. 대화 내용의 큰 줄기는 네르프가 다루는 한 비밀스러운 계획과 관련된 것이다. 공식적인 통로와 정부의 요망과는 달리 무언가 다른 일을 꾸미고 있는 네르프의 수뇌부... 과연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의 비밀스런 계획의 정체는? 적어도 우리는 그것이 “인류보완계획”의 연장선 속에 있음은 눈치 챌 수 있다.

장면은 다시 급변하여 경쾌한 음악과 함께 미사토와 신지의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으로 이동한다. 바야흐로 아침... 신지와 팽팽은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한 상태... 그러나 미사토는? 그녀는 여전히 그들과는 다른 세계(?) 속에 있었다. 제일 늦게 일어나 식탁으로 나서는 미사토... 그녀의 손에는 캔 맥주가 들려있다. 아침에 맥주? 미사토의 범상치 않은 심리의 굴곡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다. 그런 일상적이지 않은 미사토가 신지의 맘에 편할 리가 없다. 계속해서 못마땅한 신지의 모습이 미사토의 푼수와 교차된다. 이때 신지의 친구들이 누르는 초인종... 그리고 신지는 이들과 함께 학교로 향한다.

서로의 사적 공간에 어느 정도 서로를 용인해 가고 있는 두 사람... 그러나 미사토에게는 또 다른 일이 있었다. 그것은 신지에 대한 ‘공적인 보호’이다. 사적인 공간을 공유하며 그 안에서 또 다른 공적인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미사토의 ‘두 얼굴’이다. 신지에 대한 관찰을 당부하는 미사토의 ‘공적인 연락’... 그녀가 안고 있어야 하는 ‘어려움의 뿌리’이다.

신지의 학교... 미사토가 학부모와의 면담을 위해 번쩍이는 스포츠카와 함께 등장한다. 미사토의 세련됨과 눈부신 미모에 신지의 친구들은 감탄사를 만발한다. 그러나 여전히 뚱한 표정의 신지... 그에겐 그녀란 존재는 그의 친구들이 느끼듯이 그렇게 신비스럽지 않다. 왜냐하면 이제 신지는 미사토의 사적 공간마저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면은 다시 네르프 본부... 화면은 멈추어선 채.. 대원들의 대화만이 반복된다. 그들은 지금 에바의 수리에 관한 자금문제 등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카리 사령관은 비행선 위에서 협상 중이다. 이때 화두로서 세컨드 임팩트가 등장한다. 그리고 곧바로 장면은 다시 네르프 본부로 이동하여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신지는 리츠코 박사의 입을 통해 ‘세컨드 임팩트’의 진실을 전해 듣고 있다. 그리고 비로소 네르프와 에반겔리온은 또다시 닥칠지도 모르는 ‘써드 임팩트’를 막기 위한 것임도 알게 된다.

다음날 변함없는 일상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나, 한 가지 변한 것이 있다. 바로 미사토의 복장이다. 미사토는 정복차림으로 방문을 나선다. 공식적인 사무로 구 동경시를 다녀온다는 말을 뒤로하고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집을 나선다. 그리고 미사토의 전혀 다른 모습에 약간의 현기증을 느끼는 신지... 그녀의 공적 공간에 신지가 끼어들 여지는 없는 것인가?

미사토와 리츠코가 도착한 곳은 한 민간기업에서 완성한 전투용 로봇의 시연장이었다. 이 로봇의 특징은 에바시리즈와는 달리 동력을 내장하여 장장 150일간의 작전이 가능한 것이다. 에바의 작전시간이 전원연결이 없는 상태에서는 고작 5분여에 불과한 것에 비하면 상당한 수준의 작전능력을 지닌 로봇이다. 그러나 그런 동력확보를 위해 근접전투를 위주로 하는 로봇 안에 원자로을 내장하는 것은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는 일... 바로 그 문제로 사회자와 리츠코는 격렬한 논쟁을 벌인다. 논쟁은 일방적으로 리츠코에게 불리하게 돌아간다. 위대한 과학의 힘은 불안한 상태의 에바를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논박에서 리츠코는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는다.

그러나 JA 로봇의 시험 운전에서 사고가 발생한다. 갑자기 로봇에 대한 통제가 불능상태에 빠진다. 계속 상승하고 있는 원자로의 내압... 시간 안에 로봇을 제어하지 못하면 큰 폭발은 눈에 보듯 확연한 일! 이때 미사토가 문제해결을 위해 나서게 된다. 미사토는 로봇의 통제를 원점으로 돌리기 위해 패스워드를 요청한다. 그러나 책임권한이 없는 담당자... 그는 패스워드의 유출을 위해 윗선에 연락을 취하나 서로들 책임전가에 정신이 없다. 끝내 조속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미사토의 단독적인 작전이 펼쳐진다. 미사토는 신지의 에바 초호기를 이용해 JA로봇을 멈추게 하고, 미사토 자신이 직접 로봇의 내부로 들어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리고 미사토의 노력 위에 회사의 직원들은 패스워드를 선물한다. 패스워드-희망!

작전은 계획대로 진행된다. 무사히 로봇의 내부로 진입한 미사토. 그러나 또 다른 문제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바로 로봇의 프로그램이 전부 바뀌어져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희망’이라는 ‘열쇠’도 아무 소용이 없다. 절대 절명! 이제 잠시 후면 미사토는 핵폭발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될 참이다. 그때 미사토는 직접 제어봉을 밀기 시작한다. 온 힘을 다해 제어봉을 움직이려 하는 미사토. 결국 미사토의 노력은 성공하고 로봇의 동력은 해제되고 그 자리에 동상처럼 멈추어 선다. 계속 미사토의 안전을 걱정하는 신지... 신지의 눈에 미사토는 이미 타인이 아닌 것이다.

네르프의 사령관실... 그들의 대화를 통해 이번 사고의 배후에 네르프가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다시 신지의 일상... 신지는 여전히 게으르고 정돈되지 않는 미사토의 모습이 맘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친구들과의 등굣길에 신지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닫는다. 미사토의 생활에 대한 신지의 불평은 곧 그녀와 그가 이미 ‘가족의 관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것을....



1. 누군가의 희망, 때로는 배반... 그리고 절망... 그러나 여전히 희망?

에바의 일곱 번째 이야기는 참 나를 무척이도 곤란하게 만들었다. 지난 번 여섯 번째 이야기를 전하면서... 이후로는 적어도 두주에 한번 꼴로는 에바평을 올리겠다고 호언(?)한 필자의 도전을 이 놈의 일곱 번째 이야기는 무참히 짓밟았기 때문이다. 사실 시간이 무척 쪼들리기도 했지만... 그런 와중 짬짬이 에바의 이야기를 무시하지 못하고 지켜봐온 것 또한 사실... 그러나 좀처럼 나의 안테나에 이야기 꺼리가 걸려들지 않는 것이었다. 아마 수십 번은 더 봤음직한 이 놈의 일곱 번째 이야기에 조금은 질려할 즈음에... 어떤 식으로든 이번 에피소드를 처단(?)하지 못하면 나의 에바로의 여행도 끝장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급하게, 아니 무척 더디게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요소들이 아주 없지는 않은 7편인데... 왜 이리 나를 고전하게 할까? 어쩌면 이 7번째의 이야기가 보여주는 범상한 스토리에 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에바 시리즈 중에서도 보통의 로봇물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구조를 가지고 있으니 그런 설명도 가능하겠다. 과연 그런가? 잠시만 생각을 정돈해 보면 이러한 나의 ‘우격다짐’은 말 그대로 궁색한 변명으로 끝나고 만다.

솔직히 표효하자면, 이번 에피소드는 에바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진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고도 보여진다. 그리고 에바가 던지고 있는 이 질문은 너무도 본질적이고 고전적이어서... 쉽게 답변하기조차 곤란한 그런 성격의 것이기도 하다. 함 뒤돌아보자! 이번 에피소드의 대문에는 어떤 타이틀이 걸려있었던 가를!

“사람이 만든 것...”

이 질문은 사람을 질식케 한다. 철학의 영구한 주제이기도 한 이 질문... 사람이 만든 것... 인간이 바라는 것... 과연 이 질문을 통해 에바는 우리에게 무엇을 강요하고 있는 것인가?

자고로 사람들은 언제나 완벽을 추구한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스스로의 추구와 노력을 통해 그들은 완벽한 그 무엇인가를 원한다. 그것이 지식, 예술이든.... 혹은 학문, 과학이든... 그들은, 아니 우리들은 우리들이 지금 힘을 기울여 애쓰고 있는 대상물이 객관적으로 정당하며 모든 정교한 이론과 기술에도 한 치 흠이 없는 완벽한 그 무엇이 되기를 기대한다. 예술가는 예술가대로 자신이 그리고 있는 그림이, 자신이 만들고 있는 멜로디가 완벽한 그 무엇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과학자는 언제나 자신의 실험을 통해 얻어낸 결과는 만고의 진리로 남길 원한다. 바로 그들은 그러한 것을 희망하고 또 고대한다.

JA로봇을 멈추게 하는 패스워드가 ‘희망’이라는 것..... 바로 이 점에서 제작진의 탁월한 선택을 엿볼 수 있다. 인간은 과학과 학문이라는 도구를 희망으로 하여 완벽한 세계를 그리기 원한다. 그러나 언제고 인간이 받아들여야 할 결론은 ‘완벽함의 실패’이다.

왜 그런가?

에바의 제작진은 거침없이 그 부분을 세련된 이야기로 풀어헤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지금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일은 객관성을 유지한 그 무엇인 것처럼 생각한다. 아니 그렇다고 믿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인간들이 하고자 하는 일은 그러한 객관성과 진리를 토대로 움직여지기 보다는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또 이끌려 간다. 정당한 목적과 원칙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우선적으로 정비되어야 할 것이 ‘타인과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바로 그 관계의 코드에 적절히 대응하는 것... 그것이 인간이 하는 일의 성패가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그래서 때로는 나의 결정과 신념이 분명하고 정당하다고 해도... 그 인간과의 관계가 가지는 역학구도가 어그러졌을 때에는 일순간에 유지되던 ‘정당성’이란 보배도 무너지고 만다. 그래서 때로는 나의 희망이 타인에게는 절망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세밀하게 얽혀있는 인간의 일에 대한 선이해가 없이 신념과 원칙만으로 맞이하게 되는 인간의 일이 보여줄 결말은? 분명하다..... 그것은 파멸과 공멸의 모습으로 다가오게 된다. 오늘 에바의 제작진은 일본 중화학 공업 공동체와 네르프의 진실게임을 통해 그러한 인간의 일을 설교하고 있다.

어쩌면 오늘의 이 테마는 에바의 전편에 깔리는 복선이기도 하다. 오늘 이야기에 사실상 사도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분명한 에바의 상대도 사실은 없다. 모든 것이 동일한 인류에 의해 움직이고 또 조작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7번째 에피소드는 평범한 일상으로 끝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있다. 그저 미사토와 리츠코는 새로운 전투병기의 시연장에 참석한 것뿐이며... 그리고 그 시연의 결말만 꾸준히 지키고 있으면 될 뿐이다. 그러나.... 상황은 급변하게 되고... 인류의 동지요, 보호자로서 만들어진 한 로봇은 곧바로 수없는 사람들을 ‘파멸’로 이끌 수도 있는 폭탄덩어리로 화하고 만다.

사도 없는 스토리에 또 ‘다른 의미의 사도’로서 이 로봇은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로봇의 변신에 ‘로봇 자신의 선택’은 없다. 이런 상황은 단지 누군가가, 즉 다른 인간이 이 로봇의 정상적인 프로그램을 바꾸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그리곤 곧바로 사도들로부터 인류를 지켜야 한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진 에바 초호기가 역시 사도들로부터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을 처단하기 위해 출동한다.

이 엄청난 아이러니! 바로 이런 이야기의 삐딱하게 꼬임과 굴곡을 통해 에바 제작진은 이미 에바 결론부의 모습을 암시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니면 주도면밀치 못한 스토리 진행으로 그들의 의도가 간파 당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비정상적인 인간의 관계로부터 파생한 돌변적인 상황이 암시하는 것. 그렇다! 사도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 안에, 내 안에 있는 것이다. 사도란 존재는 따라서 외부에 실체적으로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왜곡된 관계가 만들어주는 서글픈 자화상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는 보완되어야 할 존재일지도 모른다. 언제나 그 안에서 돌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한 인류의 평화와 안녕은 보장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있는 돌발 상황과 왜곡된 모습을 제거하는 일! 바로 그것이 인류를 정화시키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에바 시리즈의 젤레(Seele) 위원회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제작진의 의도를 간파할 수 있다.

“보다 정교하고 완벽한 것을 추구하는 인간의 의도는 어김없이 실패로 돌아간다.”
“사도란 특별히 다른 존재가 아니다. 우리 안의 왜곡된 모습이 바로 사도의 본질인 것이다”

등등... 그들은 이와 같은 길고긴 인간학적인 관점을 가지고 에바 시리즈의 힘든 여행을 하고자 한다. 그리고 오늘 7번째의 이야기는 감추어진 사도의 본질을 이런 식으로 흘리고 있는 것이다.



2. 어른과 아이가 만날 때...

이러한 테마와 더불어 7번째 에피소드 내내 흐르고 있는 또 다른 이야기는 신지와 미사토의 생활세계 속의 긴장으로 나타난다. 서서히 한 가족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서로에 대한 경계를 풀어헤치는 두 사람... 그러나 그 안에 여전히 흐르는 어려운 문제가 있다.

그것은 어른의 세계와 여전히 보호가 필요한 청소년의 세계 간의 갈등과 굴곡이다.

신지의 세계에서 이제 미사토는 엄연한 가족의 일원이다. 따라서 신지는 미사토에 대한 바램이 많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이랬으면 좋겠고, 친구들이 찾아왔을 때는 어떠한 모습이었으면 하고, 집안에서는 어떤 몸가짐을 했으면 좋겠고... 등등... 타인으로 있을 때에는 쉽게 제기할 수 없었던 자신만의 기대를 ‘일방적’으로 미사토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른인 미사토는 또 다른 고민이 있다. 그것은 신지와는 달리 그녀에겐 언제나 공적인 세계가 사적인 공간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편으로 신지를 가족으로 여기고 있지만... 또한 그녀에게는 신지를 가족으로서가 아니라 에바의 조종사로서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 두개의 얼굴을 어른인 미사토는 그럭저럭 소화시킬 수 있겠지만...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신지는 불안함과 불편한 마음으로 바라볼 뿐이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러한 두개의 얼굴을 소유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도 들린다. 아이에게는 친밀함과 상대방에 대한 관심만 가지고서도 충분히 하나의 가족으로 생활할 수 있겠지만... 생존에의 책임을 지고 있는 어른들은 그것만으로 충분치 못하다. 그들에게는 공적인 눈으로 사적 공간을 제어해야만 하는 책임이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어른과 아이는 서로 이해하고 공감해야 할 서로의 공간이 생기게 된다. 이 점이 해소되지 않는 한 그들은 불안한 동거를 지속할 따름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한 동거는 후에 어떤식으로든 증폭되어 두 사람의 갈등으로 표출될 것이다. 제작진은 이 성장의 갈등을 에바를 움직이는 또 다른 축으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 코드를 잊지말자... 그들이 이 문제를 어떤식으로 풀어가는가를 눈여겨 보는 것... 에바를 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이런 점에서 에바는 아이와 어른의 시각이 서로 맞물리고 교차되는 한편의 성장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따라서 에바를 지키는 이들도 신지와 미사토로 대변되는 이 두 계층의 시각을 조심스레 따라가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