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centennial Man 영화읽기
2006.01.03 18:07 Edit

최근 한 케이블 방송에서 재미있는 영화 한편을 만났습니다. 물론 이 영화는 오래되었고, 또 이미 제가 독일에 있었을 때 본 것이기도 합니다. 그때도 무척 인상깊게 본 작품이었는데.. 이번에 다시 자막달린 방송으로 만나고 나니.. 그 재미와 인상이 독일에서처럼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에 대한 제 느낌이 얼마나 절실했던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영화 내용은 단촐합니다. 2005년도 한 가정에 배달된.. 가정용 로봇의 200년 동안의 일대기가 영화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그 200년을 그리기 위해.. 영화는 무진장 늘어지고, 지루합니다. 로봇이 등장하는 다른 영화들 처럼 스펙터클한 그림이나 볼만한 액션도 거의 없습니다. 너무도 실제적인 로봇 모양과 그에 따라 거의 움직임이 없는 듯한 영화의 전개는 인내심 적은 이들의 심박수를 높이는데 주저함이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많은 점에서 무시할 수 없는 무거움을 우리에게 강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성에 대한 질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질문은 지속적인 인류의 관심이기에.. 인류의 시작부터 중단되지 않은 문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라는 장르에서 인간성에 대한 진지한 물음은 이전의 Ghost in the Shell과 더불어 이 영화 Bicentennial Man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인간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요?
여기 로봇으로 태어나 최초로 인간으로 인정받은 이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로봇이었던 그와의 결혼을 행복하게 기억하는 한 여인의 심정은 어떤 것인지요.
그 차분한 대답을 이 영화는 매우 서정적인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의 설명보다는 직접 한 번 보심이 어떠실런지..
영화는 기존 인간이라는 이름 하에 얻어진, 혹은 획득한 다양한 문화현상과 정신적 가치에 대하여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예술, 사랑, 섹스, 생명,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 지독한 근본적 성찰을 이렇게도 그릴 수 있겠구나 싶어.. 몇번이고 다시 보고 싶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Ghost in Shell과는 좀 다른 구석이 있는 꽤 쓸만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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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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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저도 그 점에서는 비슷합니다. 스필버그나 윌리엄스의 천편일률적인 모습은 사실 좀 별로죠. 이번 작품은 그럼에도 좀 평가를 해 준 것이.. 로빈이 인간이 아니라 로봇으로 나왔다는 점이죠 ㅡ.ㅡ;;
그리고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 영화에서 보여준 로빈의 열연은 결국 인간과 로봇의 경계라는 것이 얼마나 조작적이고 인위적인 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제 평가가 조금 후하게 나온 것이기도 하구요.
이 영화가 그리는 죽음과는 달리.. 그러니까 본의와는 다르게 이 영화는 삶과 죽음에 대한 기존이해의 해체를 조장한다고도 볼 수 있겠죠. 그런 점에서 좀더 탐구할만한 영상이라고 생각하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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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언젠가 제가 써놓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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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그 불멸의 정체
인공생명체를 창조함에 있어서 아직은 풀리지 않은 여러 가지 문제가 무궁무진하게 남아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는 '어떻게 하면 그에게 살아갈 동기를 부여하는가?'이다.
살아갈 동기. 어쩌면 우리 인간에게도 무척이나 어렵고 무거운 주제로 인식되고 있는 것일련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약간만 다른 차원으로 생각해 본다면 너무나도 간단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미생물조차도 그러한 동기가 이미 부여되어져 있고, 또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인생의 목표와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저 고통 속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과도 같은 것이고, 그러기에 생물들은 그 소망에 따라 행동하고 있을 뿐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이미 그렇게 고통을 느끼고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생물들이 죽음을 항상 인식하고 살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삶'과 '죽음'은 서로 상반된 개념이 아니라, 마치 '주전자'와 '구름'간의 관계처럼 한참 떨어진 것이다. 왜냐하면 생물들에게 있어 삶은 과거이고 현재이지만, 죽음은 결코 경험될 수 없는 미래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죽음은 애당초 생물에게는 필요 없는 개념에 불과하다. 그리고 오로지 인간만이 그 불필요한 개념에 관해 수없이 학습하고 느낄 뿐이다.
어쩌면 우리는 창조된 이후로 결코 사라진 적이 없는 불멸의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 시작을 이기적인 유전자로 보든, 그저 진동하고 널리 퍼지고 싶었던 정보로 보든 간에 지금의 우리와는 전혀 다른 어떤 존재이었으리라. 그렇게 시간마저도 필요 없는 그런 존재의 정체, 그것은 바로 '생명'이다.
아직은 인공적인 생명체가 없는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더 나은 존재로 발전하려는 우리 인간의 처절한 각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