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울리지 않는 전화" 에바 오딧세이

무엇때문에 우리는 지금 이 일에 몰두하는지....

에반겔리온 3화, "울리지 않는 전화"

줄거리

에바의 조종석에 표정 없는 얼굴로 앉아있는 신지. 그는 리츠코의 주문에 따라 마치 인형처럼 반복적으로 조종관을 움직이고 있다. 무언가에 홀린 듯한 서늘한 표정... 신지는 이미 자신의 의미를 잃어버린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다시 장면은 미사토와 신지가 함께 사는 집으로 바뀐다. 때는 아침... 신지는 이미 등교할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야간 근무로 지쳐있는 미사토는 여전히 이불 속에서 헤어나질 못한다. 가벼운 인사와 함께 두 사람은 자신의 생활 속으로 계속 빠져든다. 이때 일상을 깨뜨리는 전화벨 소리... 네르프의 리츠코에게서 온 연락이다. 미사토와 리츠코의 대화 속에 의미 있는 언어들이 등장한다. 우선 미사토는 신지에게 새로운 핸드폰을 주었음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한번도 울리지 않는 전화기에 신지의 현 심리상태에 대한 조금은 우울한 분석을 리츠코에게 전한다. 그때 리츠코의 입을 통해 울리는 단어 하나, "고슴도치의 딜레마"....(이는 곧바로 4편의 타이틀이 된다) 두 사람은 14세의 소년 신지가 작금 겪어내고 있는 심리적인 곤란함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온기를 나누어주기 위해 가까이 접근하지만... 그때마다 상처로 울어야만 하는 고슴도치의 딜레마... 타인과 자신이 받을 상처에 대한 두려움으로 커다란 장벽을 치고있는 모습.... 그렇게 신지와 고슴도치는 닮아있었다. 전화는 미사토의 다음 대사로 끝을 맺는다.

"그 애도 곧 알게 되겠지...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다가가던가 멀어지는 것을 반복해서 결국은 서로가 그다지 상처받지 않고 살 수 있는 거리를 찾아내는 것임을..."

신지의 교실에는 많은 수의 학생들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 번 사도와의 전투에 놀란 시민들 대다수가 피난을 떠났기 때문이다. 교실 안에는 3편의 주요한 등장인물들인 신지의 학급 동료 히카리와 켄스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히카리는 지난 전투에서 부상당한 여동생을 간호하느라 오랫동안 학교에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히카리는 여동생의 부상이 에바 조종사의 미숙함에서 비롯되었다고 믿고 있다. 잠시 후 나이 많이 든 교사가 교실에 들어옴으로써 수업은 시작된다. 수업의 내용으로 보아 아마도 이 노 교사는 역사담당인 것 같다. 세컨드 임팩트에 관한 진실 아닌 정사(正史)만을 쉼 없이 읊고있는 노 교사의 수업을 뒤로하고 교실의 많은 학생들은 교실 내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신지가 에바의 조종사인지 여부를 물어온다. 신지는 자신이 에바의 조종사임을 밝히자 순간 교실은 아수라장이 된다. 많은 학생들이 신지를 둘러싸고 에바와 그에 대한 많은 것을 질문한다. 그래도 나이 탓인지 귀가 어두운 듯한 노 교사는 창 밖을 응시하며 자신의 수업을 홀로 진행하고 있다. 이내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리고, 장면은 학교 운동장의 한 구석으로 고정된다. 그곳에는 신지와, 히라키 그리고 켄스케가 서있다. 히라키는 전투 중 자신의 동생을 다치게 했다는 이유로 신지를 때린다. 그때 비상사태를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고 레이와 신지는 네르프 본부로 그리고 다른 학생들과 시민들은 대피소로 몸을 옮긴다. 히라키와 켄스케는 사도와 에바의 전투장면을 직접 보기 위해 화장실을 간다는 것을 핑계삼아 지하 대피소를 벗어난다. 그리고 곧바로 에바와 사도의 전투가 시작된다. 신지는 사도에게 선제 공격을 한다. 그러나 무차별적인 발포 때문에 생긴 포연으로 오히려 사도의 움직임을 볼 수 없게 된다. 그때 에바에게 돌진한 사도는 에바를 산기슭으로 집어던진다. 그리고 그 사이 에바의 전원 케이블도 끊어져 버려 에바의 전투시간은 5분여 밖에 남지 않게 된다. 우연히도 에바는 히라키와 켄스케가 있는 곳으로 떨어지고 신지는 이 두 동료를 발견하고 사도와의 전투에서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왜냐하면 격렬한 전투 중에 이 두 사람이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미사토는 최후의 수단으로 엔트리 플러그에 두 사람을 타게 하고 신지에게 에바의 후퇴를 명령한다(이 장면도 만화버전과는 차이가 있다. 만화에서는 엔트리 플러그에 두 친구들을 태우는 것은 미사토의 명령이 아니라 신지 자신의 판단에 기초한다. 그래서 후에 신지는 이러한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미사토와의 갈등을 겪게 된다). 그러나 신지는 미사토의 명령에 불응하고 사도에게로 돌진하여 끝내 사도를 무찌른다. 그때 에바의 남은 전투 가능한 시간은 겨우 1초.... 엔트리 플러그 안에서 히카리와 켄스케는 설명되지 않는 신지의 분노를 보고 당혹감에 어쩔 줄 몰라 한다. 다시 장면은 학교... 신지는 3일째 결석이다. 신지의 근황을 염려하는 히카리에게 켄스케는 전화번호가 적혀있는 쪽지 하나를 건넨다. 그리고 히카리는 신지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 그러나 끝내 그는 마지막 번호를 누르지 못하고 돌아서 버린다. 여전히 신지의 전화는 울지 않는다....


1. 우리는 누구를 혹은 무엇을 위해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는가?

3편의 시작과 함께 나는 서늘한 신지의 정서를 읽게 된다. 별다른 반발 없이 이 14세의 소년은 에바의 조종석에 앉아있고, 반복적으로 가상의 적을 향해 살상무기를 발사하고 있다(신지의 에바 훈련은 철저히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훈련시의 건물과 사도의 모습은 모두 가상세계인 셈이다. 마치 매트릭스의 한 장면과도 같이...). 무엇인가를 파괴하는, 혹은 '죽이는' 연습에 골몰하고 있는 이 소년.... 그리고 그 소년이 발산하고 있는 허무 가득한 그 눈빛.... 그 참혹한 생명파괴의 현장에서도 소년은 좀처럼 그 일에 몰두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 때론 그것은 단지 그의 푸념, 내지는 체념과도 같은 한 가닥 배설행위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이미 세상의 의미를 포기 당한지 오래인 사람만이 느끼는 그 무엇처럼 초연한 얼굴로 여전히 발사 스위치에 손을 얹고 있는 신지의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고 또 배워야 하는가? 작품 속에서 신지가 연신 되묻고 있는 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대사로 드러난다.

"아빠도 없는데 다시 이일을 해야하나?"
"난 이일 때문에 얻어맞기까지 했는데도.."

4번째 사도의 등장으로 에바에 몸을 얹으면서 반복적으로 던지고 있는 14세 소년의 물음이다. 이 두어마디 신지의 투명한 고백은 우리에게 많은 고민을 던지고 있다. 단적으로 말해 지금 이 소년에겐 '지구의 수호', '인류의 미래'라고 하는 거창한 플랜카드는 들어설 자리가 없다. 여전히 자신의 내부에서조차 정리가 되지 않는, 또한 설명되지도 않은 의미를 가지고 타인과의 결투가 싫어 그는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이는 리츠코 박사의 신지에 대한 분석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마 야: 어떻게 신지군이 에바를 다시 조종할 마음이 생겼지요?
리츠코: 다른 사람이 하는 말에 고분고분히 따르면서 사는 것... 그게 신지군이 살아온 방법이겠지...

타인과의 교류에서 신지가 지금까지 택한 처세술은 자신 안에 장벽을 쌓는 일, 바로 그것뿐이었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느니 차라리 내가 그 상처를 곱씹고 살겠다고 하는 것... 어쩌면 정서적 버팀목을 잃어버린 이들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일지도 모른다.

여하튼 우리는 신지의 이러한 모습 속에서 그가 얼마나 작은 '사소함'으로 에바를 조종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화두하나를 소중하게 건질 수 있게 된다.

말할 수 없이 비천한 그 '사소함'!

사실 우리가 언제나 거창한 구호와 표어로 포장하고 치장하여도 변질되거나 뒤바뀌어지지 않는 절절한 진실 하나! 그것은 바로 이러한 가벼움과 사소함이 우리의 역사를 움직이는 가장 기본적인 동기 중의 하나라고 하는 사실이다. 바로 이 점에서 에바의 제작진은 인간사(人間事)의 구체적인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대충 우리는 알고 있다. 그처럼 거창한 메카닉을 조종하는 이들은 그에 알맞은 표어가 몸을 휘두르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그래서 때로는 우주의 평화를 위해서 그는 그 곳에 있어야 하고... 혹은 인류와 후손의 무한한 평화와 행복을 위해 자신을 그곳에서 버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추앙되고 높여지고, 또한 영웅화되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신지는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에바의 조종석에 또다시 앉아있다. 그리고 나지막이 읊조리고 있다.

"젠장, 아빠도 없는데... 시바 이놈을 몰았다고 친구한테 얻어터지기나 했는데... 뭐땀시 난 다시 이 괴물같은 놈을 몰아야 하지?"

그래도 신지는 에바를 조종하게 되고.... 결국 사도를 물리치고 다시 지구와 인류를 구한다. 그러나 여전히 그에게는 '사소함'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리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질문하나가 그의 그림자를 따르고 있다.

"무엇 때문에 난 이일을 하는 것이지?"

아, 누가 이 14세의 청춘에게 달려가, "임마! 네가 하는 일은 우리 인류와 전 후손의 장래가 달려있는 살 떨리는 위대한 일이야! 네가 하는 일에 자긍심을 가지고 또 책임 있는 발언과 행동을 하란 말이얏!" 라고 강요할 수 있겠는가?

때로는 사람들은 거창한 구호를 강요하지만... 실상 우리의 인간사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거창함만으로 꾸며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거창함과 위대함 뒤편에서 쪼그려 숨죽이고 있는 우리의 소소함과 사소함이 역사를 움직이는 보다 본질적인 원동력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오늘 우리는 신지의 모습에서 그것을 보다 극명히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말할 수 없이 다양한 이데올로기로 인간이라 하는 생명체의 '위대함'을 선전한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하찮은 생명체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숭고함을 지니고 있고, 그 뛰어난 이성(理性)으로 문자를 만들고, 과학을 발전시키고, 예술을 진보시키고 또 미래를 예측한다고 설쳐 떠들어댄다. 그러나 내 눈에 인류가 다른 유기체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뛰어난 것은 고작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것 정도뿐이다(아, 요리! 인간을 인간답게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문화현상 중의 하나인 바로 이 요리! 허나 이빨 새에 낀 고춧가루만치도 존경을 받지 못하는 이 요리! 왜 이 위대한 인류의 작품인 요리에 대한 철학적 반성을 하는 이가 그리도 적은지.... 후에 난 이 문제로 본격적인 논의를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을 뿐이다). 그 외의 것들은 사실 우리가 뒤에 세련되이 치장한 요란함일 뿐... 우리는 극히 치졸하고 무반성적인 사소함을 무기 삼아 역사를 '창출(?)'한다. 그리하야 그 찬란한 사소함은 야사(野史)가 되어 역사의 뒷간에 내팽개쳐지게 되고, 포장된 위대함은 정사(正史)가 되어 도서관에서 영원한 빛을 발한다.

그러나 언제나 정사(正史)는 진실이던가? 여기서 우리는 에바 제작진이 던지는 유쾌한 도전하나를 만나게 된다.

수업을 위해 교실로 들어온 한 나이 든 선생께서는 연실 그가 직접(?) 경험하고 또 해독하고 있는 세컨드 임팩트의 진실 아닌 진실을 아이들에게 교육하고 있다. 여기서 잠시 그의 멘트를 직접 들어보자.

"인류에게 가장 힘든 시련이 시작됐다. 20세기의 마지막 해에, 남극대륙에 우주 밖에서 날아온 커다란 운석이 추락했다. 그에 따라 한 순간에 극점의 얼음이 녹게 되었다. 그 결과, 해수면이 상승했고, 지구 자전축의 동요를 가져왔고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멸종시킬 이상기후가 생겼다. 경제는 무너지고, 인종분쟁, 내전이 있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지옥 같은 고통을 당했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후..... 우리가 이 세계를 재건한 것은 겨우 15년만이다. 이것은 인간의 우수성으로 인한 결과만이 아니라, .....너희 부모님들의 피와 땀과 눈물, 그리고 노력의 결과이기도 한 것이다...(후략)."

그러나 에바를 객관적으로 보고있는 우리는 이러한 노 교사의 코멘트가 '날조된 진실'임을 누구보다도 잘 읽을 수 있다. 실상 세컨드 임팩트는 남극 부근에서 첫 번째 사도인 아담을 알의 형태로 환원하려다가 생겨난 재앙이었던 것이다. 그 사고로 인류의 반에 해당하는 20억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고의 진실은 곧 누군가의 과실과 책임에 대한 질타를 전제하고 있기에... 힘을 가진 이들은 사고의 원인을 먼 외부에서 찾게 만들었다. 그리고 심지어 완전히 타자(他者)라 할 수 있는 운석으로 인한 재앙으로 모든 것을 포장함으로 당당하게 책임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용감무쌍함을 엿보게 해준다. 그런 책임 있는 이들의 무책임함! 그로 인해 당해야만 하는 보통사람들의 소소함! 아, 이 커다란 소소함이 자그마한 사소함을 뭉개버리는 현장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에바의 제작진은 이러한 진실과 정사 사이의 갈등을 교묘하게 희화화하고 있다.

너절한 선생의 정사 교육에 아이들은 온통 모든 관심을 요상하게 생긴 로봇을 조종하는 이가 자신의 반 안에 있음을 확인하는데 투자하고 있다. 선생의 정사는 계속 이어짐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그들의 말할 수 없이 가벼운 사소함을 확인하는데 여념이 없다. 아, 얼마나 멋진 아이러니의 현장인가! 이처럼 미련하지 않은 보통사람들은 철저히 자신의 사소함에 충실하고 있으니! 그리고 앵무새처럼 조아려대는 '책임 있는' 이들의 '책임 없는' 언사를 한방에 뭉개버리고 있으니...

따라서 우리는 소박한 진실하나를 더 건져 올리게 된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이렇게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무한정 가벼운 사소함...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그 가벼운 사소함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생(生)! 그것 외에 암 것도 엄따! 살아있음, 그리고 살아감, 나의 생명의 연장... 우리를 그처럼 질리도록 사소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것뿐이다. 바로 그러한 사소함이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지켜내는 가장 위대한 힘인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신지 역시 결국 죽음의 코앞에서는 밀물처럼 쏟아지는 이 삶에의 도전을 끝내 뿌리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2편에서 이미 읽은 기억이 있다. 도대체 우리가 이처럼 살아있다고 하는 것 보다 더 큰 의미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살아있음 그 자체가 하나의 의미인 것이다. 자꾸 살아있음에 다른 가치를 부여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인류의 그 어떤 위대함과 숭고함도 이 '살아있음'을 배제해서는 제대로 설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에바의 제작진이 신지에게 인류공영의 무거운 짐을 지워지지 않았다 하여 불평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은 나름대로 충실한 역사의 해석에 매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난 그것을 이렇게 읽는다.

그리하야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다시금 살펴 볼 수 있는 '눈'을 얻어야만 한다. 사실 진실은 활자화된 신문이나, 멋들어진 TV방송의 화면 속에 있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는 믿기 힘든 모습의 소문과 지저분한 야사 속에서 우리는 더할 나위 없는 순수한 진실을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 생각해 보자! 우리 역시 길지 않은 현대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진실을 야사와 소문, 혹은 유언비어의 모습으로 매장시켜왔고, 또 그러고 있는가?

신지의 그 서늘한 '생각 없음(?)'의 표정이 우리에게 힘있게 각인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사소함'에 있는 것이다.

에바의 제작진은 계속해서 이 '사소함'을 끈덕지게 물고늘어지고 있다. 물론 그들이 이에 대한 분명한 자기 반성과 이해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나 역시 장담할 수 없다. 다만... 난 작품 속에서 그러한 제작진들의 경향을 분명히 읽었다는 것, 그것뿐이다.

우리의 사소함의 무게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 작품 속에 또 하나 등장한다. 그것은 신지가 친구들의 신변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엔트리 플러그에 그들을 태우면서 비롯된다. 미사토의 명령에 의해 신지가 친구들을 에바 안으로 들어오게 할 때... 우리는 생명의 위협을 목전에 두고 던지는 켄스케의 치열한 반응 하나에 눈물을 머금게 된다.

"앗 카메라! 내 카메라!"

무슨 이야기냐고? 아, 엔트리 플러그 안에는 가득한 그 무엇이 있다. 즉 LCL용액... 지속적으로 조종사에게 깨끗한 산소를 허파에 직접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액체이다. 그리고 이 액체는 자궁 속의 양수와도 같이 외부의 충격에 대해 조종사를 보호하는 역할도 하게 된다. 여하튼 뭐라고 치장하여도 LCL용액은 액체이고 물과 같은 성질의 것이다. 그런데 카메라가, 바로 켄스케의 가장 소중한 카메라가 이 용액 앞에 무방비로 빠져버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켄스케는 위의 비명을 지르게 되고... 엔트리 플러그에 있는 내내 찜찜한 얼굴 표정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이 꺼림칙한 얼굴은 그가 4번째 사도의 공격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로 인한 것이 아니라... 이제 망가져 버릴 수밖에 없는 그의 카메라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만 한다.

바로 이 사소함, 죽음의 공포마저도 이겨버리는 이 소소함... 바로 그것이 지금 우리를 이곳에서 무언가를 하게 만든다는 사실... 우리는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살아감(生). 바로 그것뿐이다. 나의 반복적인 생활 속의 삶! 그러한 사소함이 실상 죽음을 이기게 만든다!


2. 무엇이 때로 우리를 무섭게 분노하게 하는가?

우리는 3편의 말미에 무서울 정도로 처참한 신지의 분노를 만나게 된다. 그 분노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사도와의 전투 중에 신지의 반 친구들을 발견한 미사토는 그들을 엔트리 플러그에 옮겨 타게 한다. 그리고 곧바로 신지에게 후퇴를 명령한다. 후일을 기약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신지는 미사토의 이 명령을 한방에 거부하고 만다. 표정 없는 얼굴로 덤덤히 미사토의 명령을 듣고 있던 신지는 순간 분노를 폭발하며 사도에게로 돌진한다. 마치 에바의 폭주를 보는 듯한 신지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다. 당시 에바의 전투능력은 고작 1분여 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은 상태... 그러나 그런 사실 역시 이미 폭주한 신지에게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신지는 곧바로 사도의 핵을 공격해 결국 사도를 무찌르게 된다. 그리고 흐느끼는 신지...

신지의 분노는 미사토의 명령과 선을 같이 하고 있다. 왜 인가? 그에겐 지금으로서는 거의 유일한 가족이라고도 할 수 있는 미사토의 명령에 왜 신지는 그처럼 무섭게 분노하고 있는가? TV판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극히 제한적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잠시 만화판의 친절한 해석을 인용해보는 수밖에 없다.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신지의 미사토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된다. 그럼 무엇이 신지로 하여금 미사토를 버리게 했는가? 그것 역시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느 날 신지는 시장에 다녀오게 된다. 당연히 그의 손에는 맛있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마침 미사토는 샤워 중이다. 그 와중에 펭귄 펜펜이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하나 꿰어차고 미사토의 방으로 줄행랑을 친다. 그리고 펜펜의 뒤를 쫓아 미사토의 방에 들어선 신지... 우연히 신지는 미사토의 책상에 놓여있는 노트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 노트는 바로 서어드 칠드런인 자신의 일상에 대한 관찰 기록부였다. 노트의 내용을 잠시 뒤적여 보던 신지는 순간 굳어지고 만다. "아, 그랬던가... 미사토 역시 나의 가족이 아니었던가? 그저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하고 보호하는 그런 기관원에 불과하였던가?" 언급되고 있지는 않지만... 신지의 표정하나에서 읽혀지는 미사토에 대한 섭섭함과 아쉬움, 혹은 배신감....그 이후 신지는 미사토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여기서 잠시 만화판에 나오는 신지와 미사토의 대사를 훔쳐보자.

미사토: 와, 시원하다! 역시 샤워 뒤에는 맥주만한 게 없지! 어때? 너도 마시고 싶지 않니?
신 지: 아니요, 전 아직 미성년자이잖아요!
미사토: (뭐 씹은 표정을 하며) 아, 그렇지... 무례하긴.... 하긴 언제나 그런 식이지 너는....
미사토: 여하튼 이제 너도 에바와 무척 익숙해져 보이던데... 그리고 연습하러 가는 것도 전보다 훨씬 바지런해진 것 같고...
신 지: 상관없어요... 그런 거 제게 아무 것도 아니에요... 게다가 내가 타고 싶지 않으면 타지 않을 거예요...
미사토: 자~잠깐! 지금 뭐라고 그러는 거니? 지금 네 어깨에는 인류의 운명이 달려있는 거란 말이야! 너는 책임감도 안 느끼니?
미사토: 너가 그렇게 맥빠진 생각으로 에바에 오른다면, 곧바로 넌 저 세상 행이 될 수도 있어!
신 지: 그렇게 된다면... 설사 내가 죽더라도 난 상관없어요...
미사토: (마시던 맥주를 탁자 위에 꽈당 내려놓으며) 뭐라고! 너 그게 무슨 말이니? 뭐 아무래도 네겐 상관없다고? 그런데 네가 죽어버리면 우리에게는 큰 문제란 말이야!!!
미사토: 넌 우리에게 너무도 중요한 조종사란 말이야! 지금 네 몸은 오직 네 것만은 아니란 말이야!
신 지: (식탁에서 일어선다)
미사토: 기다려! 어디 가는 거니?
신 지: 알았어요... 여하튼 싸워서 이기면 될 것 아니에요...이기면....
미사토: (큰 목소리로) 신지!
신 지: (주방을 나서며) 음식 잘 먹었어요.. 전 그만 자러 갈래요...
미사토: (펜펜을 쳐다보며) 여하튼 제 무진장 화난 것 같은데...

어느 정도 긴 이 신지와 미사토의 대사를 통해 우리는 미사토에 대한 신지의 섭섭함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지금 신지는 가족이라 생각했던 미사토에게 실망하고 있는 것이다. 함께 한 집에서 거주하며 서로의 사적인 공간을 이해해주며 살아가는 그런 존재인 줄 알았던 미사토가 여전히 자신은 알 수 없는... 그것도 자신에 관한 일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 스스로가 용납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때 신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책은 미사토를 거스르는 일이다. 나를 가족으로 여기지 않는 이에 대한 방어본능이 신지에게 불처럼 솟아오르는 것이다.

"가족도 아닌 나의 신상에 그리 관여치 말아라! 내 가족도 아닌데 내가 죽거나 말거나 무슨 상관이냐! 그냥 계속 나를 관찰대상으로만 여겨라! 그리고 그 이상을 내게 요구하지 말아라! 너네들이 요구하는 사도들을 물리쳐주면 되는 것 아니냐! 젠장 케세라 세라!"

신지의 이 이유 있는 항변은 미사토의 반복되는 명령에 순간 분노로 표출된다.

"젠장, 이겨주면 될 거 아니야! 제발 명령 좀 내리지마! 내가 당신들한테 무슨 의미가 있겠어!? 그저 저 괴물들만 그때그때 물리쳐 주면 되는 것 아니야?! 결국 난 소모품이잖아? 제발 날 위하는 척 폼 좀 잡지마! 제발!"

신지의 분노는 모든 판단을 뒤로 돌린 채... 가시적인 적이 되고 있는 사도에게로 향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을 이 세상의 부속품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는 어른들의 시선을 저주라도 하듯이 신지는 맘껏 자신의 분노를 폭발시킨다.

"이겨주면 될 꺼 아냐, 이겨주면!!!!"

가족을 잃은 이의 분노.... 소통의 끈이 끊어진 이의 슬픔... 우리는 신지의 격노에서 그러한 그림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사실 사람들이란 소통치 않고 살기가 어려운 존재들이다. 우리에게 가족이, 친구가, 연인이 필요한 것도 사실은 즐거운 내 대화의 상대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의 소소함까지 관심을 가지며.. 때로는 징그러운 간섭으로 일관할 때도 있지만... 그렇게 내 생활의 일부가 되어가며 나의 대화를 받아줄 대상이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그 소통이 소소함이 아니라 의도된 계획이었다면... 우리가 받아야할 심리적인 충격은 그리 가볍지만은 않을 것이다. 바로 신지는 그 끊어진 소통의 줄로 인해 지금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난 당신을 내 소통의 대상으로 알았는데... 당신에게 있어서 나의 의미는 고작 직장의 여러 일들 중의 하나였다니!"

그것이 미사토의 본심이고 아니고 간을 떠나 14세의 소년이 받아야만 하는 충격의 강도는 결코 녹녹치 않은 수준의 것이다. 따라서 신지의 분노는 나름대로 충분한 이유를 갖게되는 셈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장면 하나를 놓칠 수가 없게 된다. 그것은 신지의 분노를 목격한 친구들의 모습이다. 사도를 쓰러뜨린 후 흐느끼는 신지의 등 너머 그를 바라보는 히카리의 시선... 그리고 시선이 보여주는 관심의 무게.... 아, 그런 것인가? 소통의 단절이 보여준 분노의 결과는 결국 또 다른 소통을 이어주는 고리가 되는 것인가?

신지의 분노를 통해 히카리는 신지의 마음의 한 구석을 읽게 되며 결국은 그에게 자신의 마음도 열어놓는 계기를 가지게 된다. 그러한 충동이 신지의 전화번호를 누르게 만든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해결해야 할 일이 그들에겐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막 전화번호는 눌려지지 않고 여전히 신지의 전화기는 침묵하게 된다. 그렇다면 남아있는 그들의 숙제는 무엇인가? 결국 우리는 제 4 화, "고슴도치의 딜레마"로 발을 옮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 3편중의 압권인 장면은 바로 히카리와 켄스케가 등장하는 화장실 신이다. 제작진의 무서운 경제감각은 이 화면을 위해 무려 대략 48초의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아니, 그처럼 정지되어있는 그림 하나를 가지고 거의 50초를 버틸 수 있다니!!! 무서운 이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롱타임 장면이 그리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게 하는 이들 대사의 깔끔함! 볼수록 에바는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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