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떠난 뒤의 비" 에바 오딧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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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딜레마

에반겔리온 4화, "떠난 뒤의 비"


줄거리

또다시 무거운 하루가 미사토를 흔들어 깨운다. 아침마다 무언가에 홀린 듯 반드시 가야할 곳이 있는 이들의 슬픔이여! 그녀는 그렇게 여전히 그녀를 떠나지 못하는 피로를 안고 새로운 아침을 맞는다. 대충 정신을 차린 그녀는 신지의 방을 두드린다. 그러나 그 방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새어나오지 않는다. 어느새 신지는 그녀의 공간에서 빠져나간 것이었다. "떠났나? 놀랄일도 아니지..." 그 짧은 독백으로 미사토는 신지의 가출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순간 신지를 찾아 온 토지와 켄스케.... 뜻하지 않게 신지와 함께 사는 이가 상당한 미인이라는 사실에 두 친구는 흥분한다. 그러나 두 친구 머리 위로 여전히 미사토는 거짓을 말하고 있다. "신지는 지금 네르프에서 훈련 중이야..." 그리곤 신지의 빈 방을 향해 신경질적으로 발길질을 하고 외마디 하나를 토해낸다. "신지, 이 바보!"

신지는 지금 열차 안에 있다. 수없이 바뀌는 배경인물들을 통하여 많은 시간이 흘러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종착역을 알리는 차장의 방송이 지나간 후... 끝없이 머리를 파묻고 있었던 신지는 머리를 들며 한마디를 내어 뱉는다. "돌아가야겠어..."

그러나 신지는 여전히 도심 속에 묻혀있다. 장면은 어두운 극장 안... 신지는 아무 생각 없이 극장 안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후 시간을 연신 죽이고 있다. 바로 그 때 신지 앞에서는 연인으로 보이는 두 남녀가 열렬히 키스하고 있다. 이 장면을 목격한 신지... 초점을 잃고 있었던 눈에 생기가 돌며 다시 빛이 여문다(재미있는 것은 당시 상영중의 영화의 대사 내용이다. 그 내용은 흡사 세컨드 임팩트의 긴박한 상황을 연상시키는 대사들로 일관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것이 세컨드 임팩트의 공식적인 발표와 같은 맥락 속에 있다는 것이다. 즉 엄청난 속도로 남극과 충돌한 운석의 이야기가 영화의 주 내용이다. 아, 이 기막힌 여론 조작의 현장이여! 제작진들은 우리 사회의 통념이 가지는 허상을 이처럼 교묘한 장치로 고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지는 극장의 대기실 소파에서 잠을 잔다. 그리곤 다시 극장을 나와 거리를 걷는 신지. 순간 주위는 노을에 물든 양 붉은 빛으로 치장을 하고, 흐르는 바람 속에서 신지는 에바의 울음소리와도 같은 소리를 듣는다. 그리곤 신지는 귀를 막은 채 무작정 어디론가 달음박질한다.

다시 장면은 미사토의 집... 그녀는 잠옷으로 갈아입고 이미 잠자리에 들어있다. 순간 무엇이 생각난 듯 자리에서 일어난 미사토는 신지의 방문을 열어본다. 그러나 여전히 주인을 잃은 방은 침묵 속에 빠져있을 뿐... 그리곤 던지는 미사토의 외마디, "바보" 그 즈음 신지는 산 위에 올라 제 3 동경시를 굽어보고 있다.

네르프의 연구실. 레이가 치료를 받고 있다. 그리고 미사토와 리츠코는 신지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다. 미사토의 대사는 차츰 그녀가 신지의 심리상태에 공감을 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눈치채게 해준다. 그녀는 신지가 지금 '고슴도치의 딜레마'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고 진단을 내린다. 그럼에도 에바를 위한 조종사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리츠코... 두 사람의 팽팽한 시각차가 평행선을 긋고 있다.

장면은 시 외곽 어딘가에 있을 법한 벌판. 그곳에서 신지의 반 친구 켄스케가 홀로 전쟁놀이에 열중하고 있다. 그때 켄스케는 배회하는 신지를 발견하게 되고 두 친구는 이내 합류하게 된다. 켄스케는 그 나이의 소년들이 쉽게 그렇듯이 지금 전쟁에 대한 진한 환상 속에 있다. 그래서 에바를 조종하고 더군다나 미모의 여인과 함께 살고있는 신지에 대하여 큰 부러움을 가지고 있다. 두 친구는 한 밤을 함께 보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켄스케와의 대화 속에 신지는 켄스케 역시 자신과 같이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곤 두 사람은 텐트 속에서 함께 잠을 잔다.

이른 아침 누군가가 텐트로 접근하고 있다. 바로 네르프의 보완요원들이다. 그들은 신지를 본부로 압송하기 위해 파견된 사람들이다. 그리곤 신지는 그들과 함께 네르프 본부로 향한다. 순간 장면은 신지의 학교. 토지와 켄스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주제는 전날 있었던 신지와 네르프 보완요원들에 대한 일이다. 토지는 여전히 거친 의견을 켄스케에 내어 놓는다. 네르프 본부 안에서 미사토와 신지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무언가 신지의 고통을 나누어 보려는 미사토의 시도에 신지는 싸늘한 대답만을 나열하고 있다. 결국 미사토 역시 화를 내게 되고, 미사토의 분노를 접한 신지는 무언가 다른 그 무엇이 미사토에게 자리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때는 너무 늦었다. 신지는 네르프 ID카드를 반납하고 이제 일반인의 신분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신지가 보안요원들의 손에 이끌려 네르프를 나서려는 순간 토지와 켄스케가 작별인사를 위해 신지를 찾는다. 그때 토지는 이전에 신지를 때린 것에 대한 보상으로 자신을 주먹으로 치라고 신지에게 부탁한다. 약간의 실강이가 지난 후 신지는 토지의 안면을 가격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소년들의 작별인사는 정리된다. 그러나 통로를 돌아가려는 순간 신지는 눈물을 뿌리며 토지와 켄스케에게 호소하듯 절규한다. "맞아야만 될 사람은 나야! 난 비겁하고, 겁이 많고, 교활하고, 못난이고..."

다시 본부 안. 에바 초호기 옆에서 미사토와 리츠코는 신지의 떠난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때 던지는 미사토의 한 마디.. "고슴도치의 딜레마 ... 가까이 가려고 할수록, 더 깊은 상처를 서로에게 주게 된다....... 알겠어. 그 애 그런 말투로 밖에는 자신의 마음을 전할 수 없는 거야..."
장면은 기차역 신지는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순간 열차의 도착을 알리는 방송이 울린다. 기차 역 밖에는 토지와 켄스케가 마지막 인사를 위해 머물러 있다. 순간 빠른 속도로 역으로 접근하는 푸른 빛의 한 승용차... 그 안에는 미사토가 있었다. 그러나 시간은 이미 흘러버려 정차한 기차는 다음 역을 향해 이미 발차하고 있다. 그렇다면... 신지는... 열차의 마지막 꼬리가 다 지나갈 때까지 미사토의 초조한 마음은 쉽게 가셔지질 않는다. 열차가 다 지나간 후 체념한 듯 고개를 돌리는 미사토... 그러나 언뜻 그녀의 눈동자 위로 작은 그림자 하나가 스친다. 바로 신지... 그는 여전히 머리를 숙이고 있다. 기차에 몸을 얻지 않은 신지... 그 이유는... 고개를 들고 자신을 배웅(?) 혹은 마중 나온 미사토의 모습을 확인한 신지는... 짐짓 놀라는 표정과 더불어 반가운 마음으로 마지막 대사를 미사토와 함께 나눈다.

"다녀왔습니다"
"어서 오렴..."



1.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4편은 작품 전편 내내 평행선을 이루는 두 사람의 시각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신지와 미사토의 긴장이다. 어려운 과정을 겪어 한 집의 가족으로 자리를 잡은 두 사람... 그러나 두 사람에겐 넘어서야 할 길이 너무 많았다. 그 중 두 사람이 가까워지기에 가장 큰 곤란함은 바로 '대화하는 방식'의 상이함... 그것이었다. 작품에서는 두 사람의 이러한 태도를 "고슴도치의 딜레마"라 지칭하고 있다.

문제는 평행선을 긋고 있는 이 두 사람의 심리 상태를 어떻게 묘사해야 하는 가 바로 그것이다. 에바의 제작진이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선택한 방법은 신지의 가출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미사토의 심리변화에 대한 과정묘사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아주 멋진 제목을 이 4편을 위해 배려한다.

"떠난 뒤의 비"

글쎄, 짧게나마 난 생각해 보았다. 왜 그들은 4편의 제목을 이렇게 잡았을까... 신지의 떠남을 표현하기 위해서라면 "신지의 가출" 정도도 무난할 터인데... 그냥 좀더 멋있게 보이려고 '비'라고 하는 단어 하나를 더 첨가한 것인가?

순간 난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비 오는 날을 좋아하던 나의 정서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비 오는 날 내가 받고 있었던 감흥은 무엇이었던가... 바로 그 문제에 조금 더 시간을 내어 보았다. 그러니 이런 분석이 나오는 것이었다. 먼저 상황 소개로, 난 비만 오면 꼭 마루에 나왔다. 그리고 드물지 않게 베개와 담요 하나를 들고 나와 큰 자세로 마루에 누워 비 오는 소리를 만끽하며 잠을 청하던 기억이 적지 않았었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지금의 내 분석의 틀 속에 당시의 나는 비로 인하여 생기게 되는 그 '어떠한 공간'에 묘미를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비가 뿌려대는 소리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었던 것 같다. 즉 비가 지표면과 건물의 외곽과 맞부딪혀 나는 소리는 건물 내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잠시 잊혀졌던 '건물 내부'라고 하는 폐쇄된 공간에 대하여 보다 분명한 자의식을 갖게 해주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그저 그렇게 무감하게 지낼 수 있었던 공간감도 비가 내림으로 인해 외부와 내부의 정확한 구분을 '의식의 수준'에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어느 곳, 그것도 한 장소의 내부에 위치하고 있다'라는 느낌을 비가 내리는 날 난 줄곧 마루에서 경험했던 것이다. 바로 그 '확정된 공간감'이 주는 안온함! 바로 그것을 '비'라는 놈은 우리에게 선물로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러허니 그가 떠난 후에 내리는 비의 의미는? 아, 그 쓸쓸함과 외로움을 어떤 언어로 묘사할 수 있으리오! 적어도 미사토가 신지의 가출로 인해 생긴 빈방을 지키며 감내해야 할 많은 날들은 무척 심각한 내적인 변화를 촉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라! 함께 지내던 유일한 가족이 자신의 곁을 떠난 후 혼자 한 폐쇄된 공간 안에서 만나게 되는 비의 느낌을! 따라서 미사토는 연신 신지를 '바보'라 지칭하며 그를 기억 속에서 지워보려고 무진 애를 쓰게 된다. 허나 그럴수록 더욱 커지는 그녀 안에 자리하게 되는 신지의 의미...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아직 미사토는 신지의 정서를 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저 어른의 눈으로 여전히 '안쓰러움'과 '염려'로만 무장되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신지는 분명 그녀에게 많은 중요한 언사를 던졌음에도, 여전히 미사토에게는 신지의 그러한 언어를 해독할 여유와 능력이 구비되어있지 못하다.

아,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들이여~

생각해보자! 왜 우리는 타인과 잘 대화하지 못하는가? 어느 때 언제 그러하던가? 대부분의 경우 그러한 평행선은 서로가 서로를 읽는 훈련, 내지는 준비가 잘 안 되어있을 때 빈번히 발생한다. 그리고 이러한 평행선은 친구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거의 모든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부모와의 대화에서, 스승과의 만남에서, 친구와의 놀이에서... 끝없이 상대방의 코드를 해독하려는 자세와 준비를 갖추지 않으면, 어김없이 만나게 되는 그들과의 파행을 우리는 경험하게 된다. 나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를 곡해하는 그들.... 어쩌면 이러한 경험은 평생 사람들의 그림자를 쫓아다닌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사실 해답은 무척 가까운데 있다. 그것은 서로가 상대방의 시야를 갖는 일이다. 그가 지금 어떤 맥락에서 혹은 어떤 의미로 그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지, 바로 그것에 귀를 조아릴 수 있는 '해석학적으로 열린 자세'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극히 부차적이고 또 원시적인 소통매체 중의 하나이다. 만약 그것이 완벽한 소통구조를 지니고 있다면... 사실 우리의 사전에서 '오해', '곡해', '왜곡' 등과 같은 단어들은 자취를 감추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항시 우리의 언어사용은 제한된 의미의 교환이라는 약점을 지니기 마련이다. 그래서 같은 말을 해도 알아듣는 사람은 각기 다른 경우도 생기고... 자신의 뜻과는 전혀 반대의 것으로 그 말을 해독하는 이들도 있게 되고... 등등.... 우리는 언어를 통해 생기게 되는 또 다른 오해와 어려움을 한번 이상씩은 경험해 보았을 터이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우리는 보다 정교한, 그리고 정직한 의사 소통을 위해서는 언어라고 하는 통로 자체의 제한성을 서로가 인식하고 인정해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따라서 언어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상대방을 이해하는 부수적인 장치로 끌어내릴 수 있는 과감성과 단호함도 때로는 무진장 필요할 수도 있다. 어쩌면 다른 동물들처럼 상대방의 체취를 맡고, 그의 표정을 살피며, 소리를 통해 그의 뜻과 의지를 읽는 것이 보다 정확한 상대방 읽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여하튼 의사의 소통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전 존재에 대한 이해이지... 그가 쏟아놓은 대사의 논리적인 구조에 있지 않다'라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미사토와 신지는 여전히 평행선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평행선은 한 번의 계기로 새로운 도약을 접하게 된다. 그것은 네르프 본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신지에 대한 미사토의 심문과정을 통해 촉발되어진다. 여기서 잠시 그 장면의 대사를 옮겨본다.

미사토: 오랜만이네.
신 지: 예.
미사토: 몇 일 돌아다녀 보니 좀 좋아졌니?
신 지: 잘 모르겠어요.
미사토: 에바는 준비됐어. 탈거야, 말거야?
신 지: 제가 가출했었는데도 전혀 화를 안 내는군요... 하긴 미사토씨는 타인이니까요..
신 지: 제가 1호기를 타지 않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할거죠?
미사토: 레이가 타겠지. 탈거니 안탈거니?
신 지: 전 그 애에게 모든 것을 떠맡길 수는 없어요...
신 지: 됐어요. 제가 할거니까.
미사토: 하고 싶지 않잖아?
신 지: 당연하죠. 무엇보다도, 전 그 일에 맞지 않으니깐.
신 지: 하지만 아야나미, 미사토씨 그리고 리츠코씨는...
미사토: 됐어 그만해! 왜 너가 다른 사람들을 걱정하니! 니가 싫다면, 여기서 나가!
에바하고 우릴 완전히 잊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
그런 마음으로 타는 건 우리에게도 달갑지 않아.

여기서 난 두 사람의 대화 중 다음 두 대사에 주목한다.

신 지: 제가 가출했었는데도 전혀 화를 안 내는군요... 하긴 미사토씨는 타인이니까요..
미사토: 됐어 그만! 왜 너가 다른 사람들을 걱정하니!

여기서도 우리는 두 사람의 쉽게 접점을 찾지 못하는 평행선을 만나게 된다. 먼저 신지는 자신의 가출에 대해서 침묵하는 미사토에게 일침을 가하고 있다. 그것도 미사토가 자신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타인이기에 그런 '소소한'(?) 문제로 화낼 필요는 없다 라고 자기 분석까지 내어놓으면서 말이다. 사실 이 말은 "왜 당신은 나를 가족처럼 대하지 않는가요?"라는 투정이 녹아있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신지에게 지금 필요로 한 것은... 누구에게서도 충분할 만큼 받지 못한 '가족의 간섭'이다.

'간섭'... 때론 너무도 우리를 피곤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 간섭이라고 하는 것은 가족이라는 공동체, 혹은 그와 비견할만한 정도의 구속력과 친근력이 있는 모임 속에서 이루어지는 책임감 있는 이들의 애정표현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 간섭의 폭포 속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은 그 간섭의 중요성과 가치를 미처 깨닫지 못하지만... 도저히 그 간섭을 받을 수 없는 구조 속에 있는 이들은, 그러한 불편하고 피곤한 간섭마저 행복으로 여길 수 있는 것이다.

여기 우리의 신지는 지금껏 제대로 된 간섭이라고는 받아보지 못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간섭할 가족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게도 기회는 찾아왔다. 낯선 사람이기는 하지만... 최초로 그는 가족다운 구성원을 만나게 되었고... 또 그와 한 천장 아래에서 생활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차갑게 사무적으로만 자신을 대하고 있는 타인 한 사람만을 신지는 느끼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답답하기는 미사토도 매 한가지... 그녀는 최대한 신지를 배려하고 있다. 그의 마음과 기분, 혹은 자그마한 자존심이라도 상처받지 않게 하기 위해 최대한의 '외교적 배려'를 다하고 있다. 적어도 그녀에겐 그러한 외교적 대응이 신지를 위한 최선의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메아리처럼 반복되는 신지의 차가운 답변들.... 끝내 미사토는 지금까지의 외교적인 태도를 접어들고 돌연 버르장머리 없는 동생을 훈육하는 싸늘한 누나의 태도로 돌변하게 된다.

"됐어 그만해! 왜 너가 다른 사람들을 걱정하니!"

미사토의 분노는 고스란히 신지의 마음을 때리는 경종이 되었다. 작품 속에서 이러한 신지의 심정적인 변화는 매우 조심스럽게 묘사되고 있다. 미사토의 짜증 섞인 반응이 유도되는 순간... 신지는 잠에서 깨어나듯... 흠칫 놀란다.

"왜 너는 나를 타인이라고 매도해 놓고... 이제 와서는 내 걱정을 하고 난리 브루스냐! 니 걱정이나 해! 타기 싫으면 싫은 거고... 말이야! 똑바로 하란 말이야! 지금까지 동생처럼 생각해서 많이 봐주었더니... 이 어린 녀석이 갈수록 말이야! 보자보자 하니까.... 정말 어디까지 갈 생각이야! 적당히 해! 경고야 경고!!!!"

미사토의 서슬 퍼런 호통은 고스란히 신지의 심장을 파고들기에 알맞았을 것이다. 가족들만이 가질 수 있는 이 간섭의 절정! 어쩌면 이 미사토의 일갈은 지금껏 평행선을 그었던 이 두 사람의 대화방식이 서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최초이자, 아주 효과 있는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 후 미사토는 다음과 같은 대사로서 자신이 신지에 대한 시각이 한 층 더 성숙하게 되었음을 고백하게 된다.

"고슴도치의 딜레마 ... 가까이 가려고 할수록, 더 깊은 상처를 서로에게 주게 된다....... 알겠어. 그 애 그런 말투로 밖에는 자신의 마음을 전할 수 없는 거야..."

그리곤... 두 사람은 다시 가족으로서 재회하게 된다.

"다녀왔습니다..."
"어서 오렴"

(물론 미사토 대사의 독일어 번역은 "Willkommen daheim"으로 되어 있다. 우리말로는 "집에 온걸 환영해" 정도로 바꿀 수 있겠다. 그러나 이를 필자는 보다 자연스레 옮기기 위해서 우리가 흔히 쓰는 일상어로 "어서 오렴"으로 바꾸었다. 여하튼 4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대사는 참으로 근사하다. 미사토와 신지의 긴장이 해소되는 과정을 이 두 마디 대사만큼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2. 性, 욕망 혹은 본능?

4편의 내용 중 아주 재미있는 장면이 하나 연출된다. 그것은 가출한 뒤에 신지가 극장에 앉아 시간을 때우는 장면에서 비롯된다. 당시 신지는 무료한 시간을 죽이기 위해 영화 한편을 흘려보내고 있다. 그때 제작진이 표현한 신지의 눈은 총기를 잃어버린 '멍~함' 그 자체이다. 영화에서는 검은색 동자를 아무런 초점 없이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한 순간... 신지의 눈이 다시 빛나기 시작한다. 바로 그 장면! 신지의 두서너 발짝 앞에서는 연인으로 여겨지는 두 남녀가 열심히 애무 중이다. 스쳐 가는 그림 중에 그 장면에 신지의 눈은 고정되고 초점을 맞춘 후... 다시 총기어린 눈이 되며 반짝거린다.... 아, 이 장면을 무어라 설명해야 하나...

아마도 작품의 양념처럼 집어넣은 이 장면에 제작진들은 그리 큰 비중을 두었을 것이라 보이지는 않는다. 또한 일본의 애니나 영화들이 성적인 면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개방적이고 금기사항도 적기 때문에... 시청자들을 위한 눈요기 감으로 곳곳에 이런 류의 장면을 포진시키고 있긴 하다(작품 속에 쓸데없이 등장하는 미사토의 곡선을 부각시키는 카메라의 각도를 생각해 보라!). 그러나 성에 대해서 나름대로 정리된 테제를 지니고 있는 나의 눈에는 결코 이 장면이 그리 만만해 보이지는 않는다. 사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참을 수 있는 존재의 무거움"이란 연재칼럼에서 이미 어느 정도의 내 생각을 토로한 적이 있다. 이곳 프리챌 칼럼란의 인문과학편에 있는 나의 동명 연재칼럼 중에 "사랑은 없다"편을 참조 바란다. 여기서는 그 일단만을 소개한다.

난 성이라고 하는 사태를 자꾸 욕망으로 몰고 가려는 일단의 모든 논리나 설명방식에 거부의 손을 든다. 그리고 성이라고 하는 생물학적 행위에 자꾸 도덕 윤리니 하는 잣대를 들이미는 것도 반대다! 성은 성일 뿐이다. 그것은 욕망이고 자시고 그 무엇도 아니라... 인류를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종이 종족보존을 위해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유전적 코드일 뿐이다. 따라서 난 성을 쾌락을 위한 도구로 보는 것도 거부한다. 성은 성일 뿐! 철저히 우리는 이 성에 대하여 중립적(neutral)인 시각을 지닐 수 있어야만 한다. 자꾸 성을 도덕적인 잣대로 해부하려고 하는 태도도 성을 쾌락을 위한 도구로만 보려는 시각과 큰 차이 없이 성을 타락시키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도대체 어느 성이 고결하고, 어느 성이 수치스러운 것인가? 성적 충동으로 인해 이루어지는 몸의 화학적 변화는 지극히 생리적인 것이며 그 어떠한 잣대로도 그 가치가 폄하되거나 취소되어져서도 아니 된다. 보다 그 과정에 대한 중립적이고 판단 유보적인 태도가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추상적인 성교육 역시 이미 성이란 이러 이러한 것이라고 하는 가치 판단을 전제하고 있기에 틀렸다! 성은 그러한 가치판단으로 그 의미가 상실되어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다 더 분명하고도 확실한 구체적인 성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성행위는 물론 하고 남녀의 성기의 구조와 기능 등... 성에 관한 그 모든 정보가 보다 투명하게 그리고 세세하게 노출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그 행위가 가지고 오게 되는 대 사회적 의미에 대해서도 서로 인정하고 공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은 전자는 빠진 후자만의 모습이다. 이런 절름발이 성문화와 성담론은 결국 사회 전체가 호박씨 까는 모습으로 밖에 갈 길이 없게 만든다. 생각해보자!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피임도구 사용하는 법에 대한 구체적인 예와 또 우리 주변에서 너무도 쉽게, 그리고 연령에 대한 구별 없이 당당하게 그러한 피임도구들을 구입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된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생명들을 구제할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보호할 수 있고, 상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도대체 얼마나 많이 우리의 많은 후배들을 겨우 도색잡지나 포르노 사이트 등을 통해 얻게 되는 비정상적인 성에 대한 정보에만 붙잡아 둘 것인가? 그렇게 고고하게 도덕적인 잣대로 성의 문제를 위장하고 포장하려하더라도 전 세계적으로 포르노 사이트를 가장 많이 접속하는 국민으로서 우리 국민들이 지목되는 현상은 또 어찌 설명하려고 하는가! 아, 성은 성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성이라고 하는 현상에 대해 가치 중립적인 태도와 자세, 또 그에 응당하는 관점을 우리가 획득하는 일... 그리고 그 성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에 대한 성실한 교육이다.


(뱀발)
작품 속에 도심 외곽에서 홀론 멋진(?) 전쟁쇼를 하고 있는 신지의 친구가 있다. 난 이 장면을 보며 마음 한 귀퉁이에서 쏟아지는 씁쓸함을 막아낼 길이 없었다. 왜 하필 전쟁 놀이인가? 하기야 나 역시 어린 시절 끝없이 전쟁놀이에 빠져 살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철이 들면서 그 전쟁놀이의 서늘함의 의미를 깨우친 후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생명이 생명을 접수하는 이 슬픈 현실! 더군다나 더 철이 들어 인류가 지금까지 꾸며놓은 문화의 대강이 거의 이러한 전쟁으로부터 유래하고 또 시작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접하게 된 후 난 더 깊은 통곡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언제 기회가 되면 다시 이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자.... 여기서는 내가 군생활 할 때 사격장에서 지은 시 한 수만을 옮겨 놓는다.




고경 사격장에서


내가
총 쏘기가 무섭다고 말하자
옆의 동료는 나를 보고
겁장이라고 놀려댄다
그깐 총 하나 자신 있게
쏘지 못하고
사내라고 주장할 수 있느냐는 거다

허나
내가 그토록 총 쏘기에 몸서리를 치는 것은
내가 사내가 덜 되서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여지껏
총 쏘기가 무섭다
그건
내가 쏘고있는 행위자체 보다는
그것이 가져다주는 결과에 대한
무서움 때문이었다

총 쏘기는
人馬殺傷 行爲이다

정녕
내가 당기는 방아쇠에
쏟아지는
생명에 대한 부담감이
나를 계속
무섭게 만든다
별 생각 없이 당겨버린
나의 방아쇠는
종국에는 나를 책임지고 있을
또 하나의 생명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정녕
나는 그것이 무서운 게다

허나
나의 친구들은
내가 사내가 덜 되서 무서움을
타는 거라 진단 내린다

기실
나의 큰 무서움은
총이 가져다주는
섬뜩한 결과라기보다는
그렇게
'사내가 덜됨' 이라는
잔인한 결론을 내리는
그들의 無感한 언설에 있다

우리는 그렇게
作亂치면서
生命을 죽이고

우리는 그렇게
별 의미 없이
우리를 죽인다


에바사전① 마르둑

평을 마치기 전, 4편에 이카리박사와 리츠코의 대화에 등장한 마르둑이라고 하는 단어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도록 하자... 에바에서 마르둑은 에바의 조종사들을 발굴하는 한 기구로 등장한다. 그러나 본래 이 마르둑이라고 하는 이름은 바빌론 신화에 등장한 한 신의 이름이다.

원래 마르둑은 바빌론이라고 하는 도시의 수호신이었다. 그러나 바빌론의 첫 왕조의 6번째 왕인 저 유명한 하무라비가 바빌론을 왕국의 수도로 삼고 페르시아만에서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사이의 중앙 지역까지 그 영토를 확장하게 되면서 서서히 마르둑신의 위상은 신들 중의 최고의 지위까지 차지하게 된다.

기존 이 지역의 맹주로 자리하던 수메르인들과 아카드인들은 상상력이 매우 풍부한 민족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양한 스토리의 신화들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매우 섬세하고 매력 넘치는 창조에 대한 이야기도 지니고 있었다. 바빌론의 사제들은 이러한 기존의 다양한 신화들과 자료들을 가지고 마루둑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 창출에 매진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마루둑이란 바빌론의 수호신을 이제는 혼돈에 대항해 싸운 영웅으로서, 그리고 인간과 세계의 창조자로서 극상시키게 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것이 바로 압수(Aosu)와 티아마트(Tiamt)로 대표되는 창조설화이다. 여기 잠시 그 대강을 옮겨본다.

압수는 신선한 물의 신이고 티아마트는 끝없는 소금물의 용(龍)이다. 이 둘이 서로 짝이 됨으로서 이들을 통해 수년동안 많은 신들이 태어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태어난 젊은 신들은 활기에 차고 또 무언가를 만드는데 너무 적극적인지라, 본시 고요함과 평온함을 원하는 압수는 편히 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압수는 부인 티아마트의 바램과는 달리 이 젊은 신들을 없애버리기로 작정하게 된다. 그러나 압수가 작전을 개시하기 전. 그의 계획을 알아차린 에아(Ea,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신들 중의 하나로 잔잔한 파도와 지혜의 신이다)라고 하는 신이 압수를 처치한다. 압수의 살해소식에 격분한 티아마트는 복수를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복수를 도와주기 위한 괴물들을 생산하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젊은 신들은 도망을 가고 그들의 대표자로서 마루둑을 파견하게 된다. 그래서 마루둑은 신들의 대리자로 티아마트와 싸워 승리를 거둔다. 마루둑은 티아마트가 만들어 놓은 괴물들까지 굴복시키고, 티아마트의 몸을 두 조각으로 잘라 한쪽으로는 하늘 위의 물을 바치고 있는 뚜껑(天蓋)을 만들었고, 남은 것으로는 땅 밑의 물 위에 놓여 있는 덮개를 만들었다. 그 후 마루둑은 하늘에 있는 신들을 위한 휴게소도 만들었다. 그 후 에아의 도움으로 티아마트의 두 번째 남편이자 동료인 킹수(Kingsu) 신의 피로 인간을 만들었다. 신들은 마루둑의 이런 공적을 보고 모두 기뻐하며 그를 자신들의 지도자요 왕으로서 받들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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